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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 통일신라와 발해
남북국시대 (南北國時代)
676년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 이남의 통일신라와 옛 고구려 땅 만주 일대의 발해가 남북으로 나란히 존속한 시기
신라가 당과 연합해 백제(660)·고구려(668)를 멸망시키고, 이후 옛 백제·고구려 땅을 차지하려던 당을 몰아내는 나당전쟁(676)에서 승리하며 삼국통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옛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 동모산 일대에서 발해(698)를 세우면서, 한반도 이남의 통일신라와 그 북쪽의 발해가 함께 존재하는 시기가 열렸습니다. 이를 남과 북에 두 나라가 있었다는 뜻에서 남북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삼국통일 전후로 신라 왕실은 진골 귀족 중심의 체제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흐름의 핵심 인물이 무열왕·문무왕·신문왕입니다.
| 왕 | 내용 |
|---|---|
| 무열왕(김춘추) | 진골 출신으로는 최초로 왕위에 오름(654). 당과의 군사동맹(나당동맹)을 성사시켜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 |
| 문무왕(김법민) | 백제 부흥운동 진압, 고구려 멸망(668)에 이어 나당전쟁(676)에서 당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 |
| 신문왕 | 재위 681~692. 김흠돌의 난(681)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 전제 왕권을 확립 |
신문왕 (神文王)
문무왕의 아들 · 김흠돌의 난 진압을 계기로 전제 왕권을 확립한 통일신라 제31대 왕
| 정책 | 내용 |
|---|---|
| 김흠돌의 난 진압 | 장인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681)을 계기로 연루된 진골 귀족을 대거 숙청, 귀족 세력을 크게 약화시킴 |
| 국학 설립(682) |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 양성을 도모 |
| 9주 5소경 정비 |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수도 편중을 보완할 5개의 소경(작은 서울)을 설치해 지방 통치 체제를 완성 |
|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관리에게 수조권만 있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노동력까지 징발할 수 있던 녹읍을 폐지(689)하여 귀족의 경제·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킴 |
통일신라는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지방 행정과 군사 조직을 정비했습니다. 이 체제에는 옛 삼국 백성을 하나로 아우르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 구분 | 내용 |
|---|---|
| 9주 5소경 (지방 행정) | 전국을 9개 주로 나누어 다스리고, 수도 경주가 지나치게 동남쪽에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해 5개의 소경(작은 서울)을 주요 지역에 설치 |
| 9서당 10정 (군사 조직) | 중앙군인 9서당은 신라인뿐 아니라 고구려·백제 유민, 말갈인까지 포함해 편성했고, 지방군인 10정은 9주에 각 1정씩(국경 지역인 한주에는 2정) 배치 |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은 당의 지배 아래 놓였지만, 옛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탈출해 만주 동쪽에서 새 나라를 세웠습니다.
발해는 지배층 다수가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고, 여러 기록과 문화 요소를 통해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발해는 당의 3성 6부 제도를 받아들였지만, 관청의 명칭과 실제 운영 방식은 당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제도는 빌려오되 이름과 운영은 발해식으로 바꾼 점이 핵심입니다.
| 구분 | 내용 |
|---|---|
| 3성 | 정당성·선조성·중대성으로 구성하되, 정당성 아래 좌사정·우사정을 두어 6부를 나누어 관할하는 발해만의 독자적 운영 방식 채택 |
| 6부 | 충·인·의·지·예·신 등 유교 이념을 딴 명칭을 사용해 당의 6부 명칭(이·호·예·병·형·공)과 차별화 |
신문왕 대에 정점에 달했던 신라의 전제 왕권은 8세기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배경 | 내용 |
|---|---|
| 왕위 쟁탈전 | 8세기 후반부터 진골 귀족 간 왕위 다툼이 격화되어 왕권이 급속히 약화됨 |
| 귀족 세력 강화 | 한때 폐지되었던 녹읍이 부활(경덕왕)하는 등 귀족의 경제·군사 기반이 다시 강화됨 |
| 지방 호족 성장 | 중앙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지방 곳곳에서 호족이 독자적인 군사·경제 기반을 갖추고 성장 |
| 농민 봉기 | 과도한 수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원종·애노의 난(889)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봉기 |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지방 호족들이 각자 세력을 키우며 각지에서 독립하였고, 그 결과 신라·후백제·후고구려가 다투는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남북국시대는 이렇게 저물고, 새로운 통일 왕조인 고려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올라 나당동맹을 성사시켜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
고구려 멸망과 나당전쟁 승리를 이끌어 삼국통일을 완성.
김흠돌의 난 진압 후 국학·9주 5소경·녹읍 폐지 등으로 전제 왕권을 확립.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
당과 대립하며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 등주를 공격.
당과 친선 관계로 전환, 상경용천부 천도와 주자감 설립으로 체제를 정비.
발해 최대 영토를 확보한 전성기를 이끌어 '해동성국'이라 불림.
| 항목 | 내용 |
|---|---|
| 시기 | 676년(삼국통일) ~ 926년(발해 멸망)·935년(신라 멸망) |
| 통일신라 왕권강화 | 신문왕 — 김흠돌의 난 진압 → 국학 → 9주 5소경 → 녹읍 폐지·관료전 지급 |
| 통치체제 | 9주 5소경(지방), 9서당 10정(군사, 민족융합적 성격) |
| 발해 왕 계보 | 대조영(건국) → 무왕(당과 대립) → 문왕(당과 친선·상경용천부) → 선왕(해동성국) |
| 고구려 계승 근거 | 일본에 보낸 국서의 '고려국왕' 칭호, 지배층 구성, 온돌·굴식돌방무덤 |
| 쇠퇴와 종결 | 진골 왕위 쟁탈전 → 녹읍 부활 → 호족 성장 → 원종·애노의 난(889) → 후삼국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