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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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 통일신라와 발해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발해 해동성국 신문왕의 왕권강화

한눈에 보기

남북국시대 (南北國時代)

676년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 이남의 통일신라와 옛 고구려 땅 만주 일대의 발해가 남북으로 나란히 존속한 시기

676년신라의 삼국통일 완성
698년발해 건국
9세기해동성국(발해)·신라 하대 혼란
926년발해 멸망(거란)
935년신라 멸망(고려에 항복)

신라가 당과 연합해 백제(660)·고구려(668)를 멸망시키고, 이후 옛 백제·고구려 땅을 차지하려던 당을 몰아내는 나당전쟁(676)에서 승리하며 삼국통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옛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 동모산 일대에서 발해(698)를 세우면서, 한반도 이남의 통일신라와 그 북쪽의 발해가 함께 존재하는 시기가 열렸습니다. 이를 남과 북에 두 나라가 있었다는 뜻에서 남북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왜 중요한 시기일까?
  • 통일신라는 신문왕의 왕권 강화를 통해 진골 귀족을 억누르고 전제 왕권 체제를 확립함
  • 발해는 고구려 계승 의식을 분명히 하며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로 규정, 이후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성장함
  • 통일신라의 쇠퇴와 발해의 멸망은 이후 후삼국시대와 고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됨

통일신라의 왕권 강화

삼국통일 전후로 신라 왕실은 진골 귀족 중심의 체제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흐름의 핵심 인물이 무열왕·문무왕·신문왕입니다.

왕내용
무열왕(김춘추)진골 출신으로는 최초로 왕위에 오름(654). 당과의 군사동맹(나당동맹)을 성사시켜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
문무왕(김법민)백제 부흥운동 진압, 고구려 멸망(668)에 이어 나당전쟁(676)에서 당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
신문왕재위 681~692. 김흠돌의 난(681)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 전제 왕권을 확립

신문왕 (神文王)

문무왕의 아들 · 김흠돌의 난 진압을 계기로 전제 왕권을 확립한 통일신라 제31대 왕

681년즉위·김흠돌의 난 진압
682년국학 설립
685년9주 5소경 정비
689년녹읍 폐지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정책

정책내용
김흠돌의 난 진압장인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681)을 계기로 연루된 진골 귀족을 대거 숙청, 귀족 세력을 크게 약화시킴
국학 설립(682)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 양성을 도모
9주 5소경 정비전국을 9주로 나누고 수도 편중을 보완할 5개의 소경(작은 서울)을 설치해 지방 통치 체제를 완성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관리에게 수조권만 있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노동력까지 징발할 수 있던 녹읍을 폐지(689)하여 귀족의 경제·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킴
  시험 포인트
  • 왕권강화 순서 기억하기: 김흠돌의 난 진압 → 국학 설립 → 9주 5소경 정비 → 녹읍 폐지
  • 녹읍 폐지는 왕권 강화, 녹읍 부활(경덕왕, 8세기 후반)은 귀족 세력 강화 — 서로 반대 개념으로 짝지어 암기

통치 체제

통일신라는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지방 행정과 군사 조직을 정비했습니다. 이 체제에는 옛 삼국 백성을 하나로 아우르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구분내용
9주 5소경
(지방 행정)
전국을 9개 주로 나누어 다스리고, 수도 경주가 지나치게 동남쪽에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해 5개의 소경(작은 서울)을 주요 지역에 설치
9서당 10정
(군사 조직)
중앙군인 9서당은 신라인뿐 아니라 고구려·백제 유민, 말갈인까지 포함해 편성했고, 지방군인 10정은 9주에 각 1정씩(국경 지역인 한주에는 2정) 배치
  9서당의 민족융합적 성격
  • 9서당에는 신라인 외에 고구려·백제 유민, 말갈인까지 포함되어 있었음
  • 피정복민을 군사 조직에 편입시켜 통합을 꾀한 것으로, 삼국통일 이후 민족 융합 정책의 대표 사례로 평가됨

발해의 건국과 발전

고구려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은 당의 지배 아래 놓였지만, 옛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탈출해 만주 동쪽에서 새 나라를 세웠습니다.

698년
발해 건국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만주 지린성 일대)에서 나라를 세움. 처음 국호는 '진(震)', 이후 '발해'로 개칭.
719~737년
무왕(대무예)
당과 대립 관계를 유지하며 영토를 확장.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의 등주를 공격할 만큼 독자적이고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폄.
737~793년
문왕(대흠무)
당과 친선 관계로 전환하고 당의 문물을 받아들임. 상경용천부로 천도, 유학 교육기관인 주자감 설립.
818~830년
선왕(대인수)
발해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제도를 정비, 전성기를 이루어 중국에서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정도로 번성함.
926년
발해 멸망
거란(요)의 침입으로 멸망. 왕자 대광현을 비롯한 유민 다수가 고려로 망명.
  시험 포인트
  • 왕 순서와 업적 매칭: 무왕(당과 대립·장문휴 등주 공격) → 문왕(당과 친선·상경용천부 천도·주자감) → 선왕(최대 영토·해동성국)
  • '해동성국' = 선왕 때의 발해 — 자주 출제되는 연결 키워드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

발해는 지배층 다수가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고, 여러 기록과 문화 요소를 통해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고구려 계승의 근거
  •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발해 왕이 스스로를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 칭한 기록이 남아 있음
  • 지배층의 다수가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고, 건국자 대조영도 고구려 장수 출신으로 전해짐
  • 온돌 시설, 굴식돌방무덤(석실봉토분) 등 고구려와 유사한 문화 요소가 발해 유적에서 다수 확인됨

통치 체제 — 3성 6부

발해는 당의 3성 6부 제도를 받아들였지만, 관청의 명칭과 실제 운영 방식은 당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제도는 빌려오되 이름과 운영은 발해식으로 바꾼 점이 핵심입니다.

구분내용
3성정당성·선조성·중대성으로 구성하되, 정당성 아래 좌사정·우사정을 두어 6부를 나누어 관할하는 발해만의 독자적 운영 방식 채택
6부충·인·의·지·예·신 등 유교 이념을 딴 명칭을 사용해 당의 6부 명칭(이·호·예·병·형·공)과 차별화

통일신라의 쇠퇴

신문왕 대에 정점에 달했던 신라의 전제 왕권은 8세기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배경내용
왕위 쟁탈전8세기 후반부터 진골 귀족 간 왕위 다툼이 격화되어 왕권이 급속히 약화됨
귀족 세력 강화한때 폐지되었던 녹읍이 부활(경덕왕)하는 등 귀족의 경제·군사 기반이 다시 강화됨
지방 호족 성장중앙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지방 곳곳에서 호족이 독자적인 군사·경제 기반을 갖추고 성장
농민 봉기과도한 수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원종·애노의 난(889)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봉기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지방 호족들이 각자 세력을 키우며 각지에서 독립하였고, 그 결과 신라·후백제·후고구려가 다투는 후삼국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남북국시대는 이렇게 저물고, 새로운 통일 왕조인 고려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주요 인물

김춘추(태종무열왕)
신라 제29대 왕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올라 나당동맹을 성사시켜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

문무왕
신라 제30대 왕

고구려 멸망과 나당전쟁 승리를 이끌어 삼국통일을 완성.

신문왕
신라 제31대 왕

김흠돌의 난 진압 후 국학·9주 5소경·녹읍 폐지 등으로 전제 왕권을 확립.

대조영
발해 건국자(고왕)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

대무예(무왕)
발해 제2대 왕

당과 대립하며 장문휴를 보내 산둥반도 등주를 공격.

대흠무(문왕)
발해 제3대 왕

당과 친선 관계로 전환, 상경용천부 천도와 주자감 설립으로 체제를 정비.

대인수(선왕)
발해 제10대 왕

발해 최대 영토를 확보한 전성기를 이끌어 '해동성국'이라 불림.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시기676년(삼국통일) ~ 926년(발해 멸망)·935년(신라 멸망)
통일신라 왕권강화신문왕 — 김흠돌의 난 진압 → 국학 → 9주 5소경 → 녹읍 폐지·관료전 지급
통치체제9주 5소경(지방), 9서당 10정(군사, 민족융합적 성격)
발해 왕 계보대조영(건국) → 무왕(당과 대립) → 문왕(당과 친선·상경용천부) → 선왕(해동성국)
고구려 계승 근거일본에 보낸 국서의 '고려국왕' 칭호, 지배층 구성, 온돌·굴식돌방무덤
쇠퇴와 종결진골 왕위 쟁탈전 → 녹읍 부활 → 호족 성장 → 원종·애노의 난(889) → 후삼국시대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 한반도와 만주에 함께 선 두 나라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