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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전쟁과 나당전쟁
삼국통일전쟁 (三國統一戰爭)
수·당의 중국 통일이라는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고구려의 대중국 항쟁부터 신라의 백제·고구려 정복, 그리고 나당전쟁까지 이어진 반세기의 전쟁
| 배경 | 589년 수(隋)의 중국 통일 → 618년 당(唐) 건국. 통일 제국이 등장하며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요동침 |
| 1단계 | 고구려 대 수·당의 전쟁(여수전쟁·여당전쟁) — 고구려가 두 차례의 침공을 모두 막아냄 |
| 2단계 | 신라·당의 군사동맹(나당동맹, 648) → 나당연합군의 백제 정복(660), 고구려 정복(668) |
| 3단계 |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에 맞선 신라의 나당전쟁(670~676) → 매소성·기벌포 전투 승리로 통일 완성 |
| 결과 |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잇는 선 이남 지역에서 삼국통일 달성(676), 최초의 민족 통일 |
6세기 말 수가 중국을 통일하자 고구려는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하며 견제에 나섰고, 이에 분노한 수 문제와 뒤이은 양제가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이후 당 태종도 고구려 원정을 감행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 침공군 | 수 양제, 별동대 30만(우중문·우문술 지휘)을 포함한 대규모 원정군 동원 |
| 고구려 대응 | 을지문덕이 거짓 항복과 유인 작전으로 수의 별동대를 평양성 부근까지 끌어들임 |
| 전투 | 철수하는 수의 별동대를 살수(청천강)에서 기습해 궤멸시킴 |
| 결과 | 30만 별동대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 명에 불과. 수의 국력을 크게 소진시켜 훗날 수 멸망(618)의 한 원인이 됨 |
수를 이은 당의 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642, 영류왕 시해 및 보장왕 옹립)을 구실 삼아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요동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며 진격했지만, 작은 성인 안시성에서 성주(안시성주, 흔히 양만춘으로 전해짐)와 군민이 굳게 저항하며 수개월간 당군을 막아냈고, 결국 당 태종은 겨울 추위와 병력 손실을 못 이겨 철군했습니다.
642년 백제 의자왕이 신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해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개 성을 함락시키면서 신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 시도 | 내용 | 결과 |
|---|---|---|
| 대고구려 청병 | 김춘추가 직접 고구려에 가서 원병을 요청 | 고구려가 죽령 이북 영토 반환을 요구하며 거절, 오히려 억류당할 위기 |
| 대당 동맹 | 648년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군사동맹 체결(나당동맹) | 당의 군사 지원을 확보, 이후 백제·고구려 정복의 발판 마련 |
나당동맹을 성사시킨 김춘추는 654년 신라 왕위에 올라 태종무열왕이 되었으며, 이는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나당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총공격했습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육로로,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은 바닷길로 백제 수도 사비성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백제의 명장 계백은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김유신의 신라군을 맞아 네 차례나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멸했습니다. 결국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백제는 건국(기원전 18) 이후 700년 가까운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 중심 인물 | 내용 |
|---|---|
| 복신 · 도침 | 주류성을 거점으로 봉기, 왜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 |
| 흑치상지 | 임존성을 거점으로 부흥군에 합류해 활약 |
| 왜의 지원 | 백제와 우호 관계였던 왜가 대규모 지원군 파병 |
| 백강 전투 (663) | 나당연합군과 왜·백제 부흥군이 백강(금강 하구)에서 격돌, 부흥군 측이 대패하며 부흥운동 좌절 |
오랜 항쟁 속에서도 건재했던 고구려는 실권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급격히 흔들렸습니다. 그의 아들 남생·남건·남산 사이에 권력 다툼(내분)이 벌어졌고, 장남 남생이 당에 투항하면서 고구려의 내부 정보와 방어 체계가 크게 노출되었습니다.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나당연합군이 총공세를 펼쳤고,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멸망했습니다.
검모잠이 왕족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며 한성(재령)을 거점으로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지도부 내분(검모잠이 안승에게 피살됨) 끝에 안승이 신라에 투항했고, 신라는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삼아 금마저(익산)에 안치하며 고구려 유민을 포섭했습니다.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은 애초 약속과 달리 옛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 신라 땅에 계림도독부,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며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백제 유민 세력과 힘을 합쳐 당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의 30만 별동대를 유인해 궤멸시킨 고구려의 명장.
645년 당 태종의 대군을 안시성에서 수개월간 막아내 철군시킨 인물로 전해짐.
648년 나당동맹을 성사시킨 외교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즉위(654).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을 격파하고 백제를 멸망시킨 통일전쟁의 핵심 무장.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로 신라 대군에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
즉위 초 신라를 크게 압박했으나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사비성이 함락되며 항복.
642년 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당의 침공을 막아냈으나, 사후 아들들의 내분이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됨.
| 사건 | 연도 | 핵심 내용 |
|---|---|---|
| 살수대첩 | 612 | 을지문덕, 수의 30만 별동대 궤멸 |
| 안시성 싸움 | 645 | 안시성주, 당 태종 침공 격퇴 |
| 나당동맹 | 648 | 김춘추, 고구려에 거절당한 뒤 당과 동맹 체결 |
| 백제 멸망 | 660 | 황산벌 전투(계백 전사) → 사비성 함락 → 의자왕 항복 |
| 백강 전투 | 663 | 백제 부흥군·왜 연합군 vs 나당연합군, 부흥운동 종식 |
| 고구려 멸망 | 668 |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내분 → 평양성 함락 |
| 매소성 전투 | 675 | 신라, 당의 20만 대군 격파 |
| 기벌포 전투 | 676 | 신라 수군, 당의 설인귀 함대 격파 → 삼국통일 완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