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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벌귀족의 시대와 균열
문벌귀족 사회 — 전성기의 그늘
11~12세기, 소수 가문이 권력을 대물림하다 두 차례의 큰 정변으로 흔들린 시기
| 문벌귀족 | 과거·음서로 관직을 독점하고 왕실과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은 소수 가문 집단(경원 이씨, 파평 윤씨 등) |
| 이자겸의 난(1126) | 왕실 외척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반란 → 인종이 진압, 문벌귀족 사회의 모순이 드러남 |
|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 | 서경파(묘청)의 천도·칭제건원 주장이 좌절되고 반란으로 번짐 → 김부식이 진압 |
| 결과 | 문벌귀족 사회의 지배 체제 자체가 흔들리며, 이후 무신정변(1170)의 배경이 됨 |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고 안정을 찾은 11세기 고려는 문종(재위 1046~1083) 대를 정점으로 하는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 정치는 과거와 음서로 관직에 오르고 공음전의 혜택을 누리며, 왕실과 대를 이어 혼인하는 소수의 문벌귀족 가문이 주도했습니다.
| 특권 | 내용 |
|---|---|
| 음서제 | 공신과 5품 이상 관료의 자손은 시험 없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특권 |
| 공음전 | 5품 이상 관료에게 지급되어 세습이 가능했던 토지 — 가문의 경제 기반을 대물림 |
| 중첩 혼인 | 왕실과 소수 문벌 가문끼리 폐쇄적으로 혼인을 반복해 권력을 독점 |
대표적인 문벌 가문으로는 인종의 외척이 된 경원(인주) 이씨, 그리고 파평 윤씨·경주 김씨·해주 최씨(최충 가문) 등이 있습니다. 한편 최충이 세운 9재학당을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해 관학(국자감)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경원 이씨 가문의 이자겸은 예종·인종 2대에 걸쳐 왕의 장인이 되면서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더 굳히려 왕위까지 넘보자("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 인종이 이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자겸은 심복 척준경과 함께 궁궐에 불을 지르며 반란을 일으켰지만,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배신하게 만들면서 반란이 진압되었습니다.
이자겸의 난 이후 개경 문벌귀족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승려 묘청과 정지상 등 서경(평양) 출신 세력은 서경 천도, 칭제건원, 금(金)국 정벌을 주장했습니다(서경파). 이는 개경 기득권 세력인 김부식 등 문벌귀족(개경파)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서경 천도가 좌절되자 묘청 세력은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로 하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약 1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 비교 | 이자겸의 난 |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
| 주도 세력 | 왕실 외척(경원 이씨) | 서경파(묘청·정지상 등) |
| 목적 | 개인의 권력 강화 · 왕위 도모 | 서경 천도·칭제건원·금국 정벌(자주적 대외 노선) |
| 진압 인물 | 인종(척준경 회유) | 김부식 |
| 결과 | 문벌귀족 체제의 모순 노출 | 개경파 문벌귀족의 보수적 승리, 서경 세력 몰락 |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은 인종의 명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를 편찬했습니다. 기전체로 서술되었으며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따라 신이(神異)한 이야기를 배제한 것이 특징입니다. 훗날(고려 후기) 편찬되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자주 비교되니 시기와 서술 방식을 헷갈리지 않아야 합니다.
두 대에 걸쳐 왕의 장인이 되어 최고 권력을 누리다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모두 겪은 왕.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제거.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주장하다 좌절되자 반란을 일으킨 서경 세력의 중심인물.
묘청의 난을 진압한 대표 문벌귀족. 이후 삼국사기를 편찬함.
| 항목 | 내용 |
|---|---|
| 문벌귀족 특권 | 음서제 · 공음전 · 왕실과의 중첩 혼인 |
| 이자겸의 난 | 1126년, 외척의 권력 남용 → 인종이 척준경을 이용해 진압 |
| 묘청의 난 | 1135년, 서경파(자주) vs 개경파(사대) 대립 → 김부식이 진압 |
| 편찬 사업 | 1145년 삼국사기(김부식) —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서 |
| 의의 | 문벌귀족 체제의 한계 노출 → 1170년 무신정변으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