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에듀테크 프로젝트 대시보드

문벌귀족의 시대와 균열

문벌귀족의 시대와 균열 음서·공음전 이자겸의 난(1126)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

한눈에 보기

문벌귀족 사회 — 전성기의 그늘

11~12세기, 소수 가문이 권력을 대물림하다 두 차례의 큰 정변으로 흔들린 시기

11세기문벌귀족 형성
1126년이자겸의 난
1135년묘청의 난
1145년삼국사기 편찬
문벌귀족과거·음서로 관직을 독점하고 왕실과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은 소수 가문 집단(경원 이씨, 파평 윤씨 등)
이자겸의 난(1126)왕실 외척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반란 → 인종이 진압, 문벌귀족 사회의 모순이 드러남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서경파(묘청)의 천도·칭제건원 주장이 좌절되고 반란으로 번짐 → 김부식이 진압
결과문벌귀족 사회의 지배 체제 자체가 흔들리며, 이후 무신정변(1170)의 배경이 됨
  왜 중요한 시기일까?
  • 고려 귀족 문화의 전성기이면서 동시에 지배층 내부 갈등이 폭발한 이중적인 시기
  • 두 사건(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은 문벌귀족 체제의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이후 무신정변으로 이어짐
  •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평가할 만큼 역사적 비중이 큼

문벌귀족 사회란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고 안정을 찾은 11세기 고려는 문종(재위 1046~1083) 대를 정점으로 하는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 정치는 과거와 음서로 관직에 오르고 공음전의 혜택을 누리며, 왕실과 대를 이어 혼인하는 소수의 문벌귀족 가문이 주도했습니다.

특권내용
음서제공신과 5품 이상 관료의 자손은 시험 없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특권
공음전5품 이상 관료에게 지급되어 세습이 가능했던 토지 — 가문의 경제 기반을 대물림
중첩 혼인왕실과 소수 문벌 가문끼리 폐쇄적으로 혼인을 반복해 권력을 독점

대표적인 문벌 가문으로는 인종의 외척이 된 경원(인주) 이씨, 그리고 파평 윤씨·경주 김씨·해주 최씨(최충 가문) 등이 있습니다. 한편 최충이 세운 9재학당을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해 관학(국자감)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균열의 타임라인

1046~1083
문종 대의 전성기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귀족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로 평가받음.
1076년
경정전시과
전시과 제도를 현직 관료 중심으로 재정비, 문벌귀족의 경제적 지배력이 한층 공고해짐.
1109년
동북 9성 축조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해 동북 9성을 쌓음(이후 여진에 반환).
1126년
이자겸의 난
외척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인종의 회유로 척준경이 돌아서며 진압됨.
1135년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서경 천도·칭제건원이 좌절되자 묘청 세력이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킴.
1136년
묘청의 난 진압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약 1년 만에 서경성을 함락, 반란을 진압함.
1145년
삼국사기 편찬
김부식이 왕명으로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를 편찬,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을 반영.
1170년
무신정변 예고
문신 우대·무신 차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며 다음 시대(무신정권)의 도화선이 됨.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이자겸의 난 (1126)

경원 이씨 가문의 이자겸은 예종·인종 2대에 걸쳐 왕의 장인이 되면서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더 굳히려 왕위까지 넘보자("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 인종이 이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자겸은 심복 척준경과 함께 궁궐에 불을 지르며 반란을 일으켰지만,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배신하게 만들면서 반란이 진압되었습니다.

②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1135)

이자겸의 난 이후 개경 문벌귀족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승려 묘청과 정지상 등 서경(평양) 출신 세력은 서경 천도, 칭제건원, 금(金)국 정벌을 주장했습니다(서경파). 이는 개경 기득권 세력인 김부식 등 문벌귀족(개경파)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서경 천도가 좌절되자 묘청 세력은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로 하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약 1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비교이자겸의 난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주도 세력왕실 외척(경원 이씨)서경파(묘청·정지상 등)
목적개인의 권력 강화 · 왕위 도모서경 천도·칭제건원·금국 정벌(자주적 대외 노선)
진압 인물인종(척준경 회유)김부식
결과문벌귀족 체제의 모순 노출개경파 문벌귀족의 보수적 승리, 서경 세력 몰락

③ 삼국사기 편찬 (1145)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은 인종의 명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를 편찬했습니다. 기전체로 서술되었으며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따라 신이(神異)한 이야기를 배제한 것이 특징입니다. 훗날(고려 후기) 편찬되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자주 비교되니 시기와 서술 방식을 헷갈리지 않아야 합니다.

  시험 포인트
  • 이자겸의 난(1126) → 묘청의 난(1135) 순서 기억하기
  • 묘청(서경파, 자주적) vs 김부식(개경파, 사대·보수적)의 노선 차이 구분하기
  • 삼국사기(김부식, 고려 중기, 유교적) vs 삼국유사(일연, 고려 후기, 불교·설화 중심) 비교

주요 인물

이자겸
경원 이씨 외척

두 대에 걸쳐 왕의 장인이 되어 최고 권력을 누리다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

인종
고려 17대 왕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모두 겪은 왕.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제거.

묘청
승려 · 서경파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주장하다 좌절되자 반란을 일으킨 서경 세력의 중심인물.

김부식
문신 · 개경파

묘청의 난을 진압한 대표 문벌귀족. 이후 삼국사기를 편찬함.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문벌귀족 특권음서제 · 공음전 · 왕실과의 중첩 혼인
이자겸의 난1126년, 외척의 권력 남용 → 인종이 척준경을 이용해 진압
묘청의 난1135년, 서경파(자주) vs 개경파(사대) 대립 → 김부식이 진압
편찬 사업1145년 삼국사기(김부식) —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서
의의문벌귀족 체제의 한계 노출 → 1170년 무신정변으로 이어짐
"화려한 귀족 문화 아래, 균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