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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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성종 — 고려를 완성하다

광종·성종 — 고려를 완성하다 노비안검법 과거제 시무 28조 2성 6부

한눈에 보기

광종과 성종 — 왕권 강화에서 유교 통치 체제까지

건국 직후 불안정했던 고려를 중앙집권 국가로 완성시킨 두 왕

949~975광종 재위
956년노비안검법
958년과거제 시행
981~997성종 재위
982년시무 28조
광종(4대)949년 즉위. 왕권을 위협하던 개국공신·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 강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
경종(5대)976년 전시과 제정 — 관료에게 토지 수조권을 지급하는 토지 제도의 기틀 마련(광종~성종 사이 과도기)
성종(6대)981년 즉위.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에 기반한 중앙집권 통치 체제를 완성
의의왕건이 세운 나라의 뼈대에 광종이 왕권이라는 '중심'을, 성종이 제도라는 '틀'을 세워 넣은 시기
  왜 중요한 시기일까?
  • 건국 초 호족 연합적 성격이 강했던 고려가 왕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탈바꿈하는 결정적 전환기
  • 과거제 도입으로 능력 본위의 관료 선발이 시작되어 이후 고려·조선 관료제의 뿌리가 됨
  • 성종이 정비한 2성 6부, 12목, 국자감 등은 이후 고려 500년 통치 체제의 기본 골격이 됨

건국 초 고려가 안고 있던 과제

왕건이 죽은 뒤 혜종(2대)·정종(3대) 대에는 여전히 호족과 공신들의 힘이 왕권보다 강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왕규의 난(945)처럼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호족 간 무력 다툼까지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4대 왕으로 즉위한 광종은 강력한 왕권 강화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건국 초의 불안 요소
  • 개국공신·호족 세력이 여전히 사병(私兵)과 지방 기반을 보유
  •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실 인척 간 갈등(왕규의 난 등)
  • 체계적인 관료 선발·행정 제도가 미비해 호족 출신 위주의 인사 운영

체제 정비 타임라인

949년
광종 즉위
4대 왕으로 즉위. 초반에는 유화적 태도를 보이다 점차 왕권 강화로 방향을 전환.
956년
노비안검법
불법으로 노비가 된 양인을 조사해 해방시켜,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사병 자원)을 약화시킴.
958년
과거제 시행
귀화 한족 관료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도입, 신진 인재를 학문 실력으로 선발하기 시작.
960년
백관 공복 제정 · 칭제건원
관리들의 복색을 등급별로 규정하고, '광덕·준풍' 등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개경을 황도라 칭함.
975년
광종 사망
말년에는 호족 숙청이 과격해져 많은 공신·호족이 희생됨. 왕권은 크게 강화된 채로 승하.
976년
전시과 제정(경종)
관직 복무 대가로 토지의 수조권(전지·시지)을 지급하는 시정전시과 실시. 고려 토지 제도의 출발점.
981년
성종 즉위
6대 왕으로 즉위. 유교적 통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정 개혁을 본격 추진.
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
유학자 최승로가 올린 개혁안을 수용, 유교 정치 이념에 입각한 통치 체제 정비를 시작.
983년
12목 설치
지방 주요 거점 12곳에 처음으로 지방관(목사)을 파견, 호족이 장악하던 지방 통치에 중앙 권한이 미치기 시작.
992년
국자감 정비
국립 교육 기관 국자감을 정비해 유교 경전 중심의 관료 양성 체계를 갖춤.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다음 편 '거란 전쟁' 참고).
997년
성종 사망
2성 6부 등 통치 체제의 큰 틀을 완성한 채 승하. 이후 목종을 거쳐 현종 대에 체제가 안정됨.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노비안검법 (956) — 호족의 뿌리를 흔들다

후삼국 전쟁과 호족들의 사적 지배 과정에서 불법으로 노비가 된 양인이 많았습니다. 광종은 이들을 조사해 원래 신분인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권 조치가 아니라, 호족들이 보유한 노비(=사병·경제력의 원천)를 줄여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조세·역 부담자 확대)을 늘리는 정치적 목적이 강한 정책이었습니다.

② 과거제 시행 (958)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전까지 관직은 대체로 호족·공신 가문의 세습·추천으로 채워졌지만, 과거제는 시험 성적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왕에게 충성하는 신진 세력을 육성할 통로가 되었습니다.

③ 최승로의 시무 28조 (982)

성종이 즉위 직후 신하들에게 정책 건의를 구하자, 유학자 최승로가 신라 멸망의 원인과 고려 초 정치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28개조의 개혁안을 올렸습니다(현재 22개조만 전해짐). 핵심은 유교적 통치 이념 확립과 지방관 파견을 통한 중앙집권 강화였으며, 동시에 지나친 불교 행사 억제도 건의했습니다. 성종은 이를 대부분 수용해 이후 개혁의 청사진으로 삼았습니다.

④ 통치 체제의 완성 — 2성 6부와 12목

기구역할
2성(중서문하성·상서성)중서문하성은 국가 최고 정책 심의, 상서성은 6부를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최고 행정 기구
6부(이·병·호·형·예·공)각 분야 행정 실무를 담당 — 오늘날 정부 부처와 유사한 역할
중추군(중추원)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담당
삼사화폐·곡식의 출납 등 재정 회계를 담당
12목지방 주요 거점에 지방관(목사) 파견 — 호족이 독점하던 지방 통치에 중앙 권한이 처음 미침
향리 제도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은 토착 향리가 실무 행정을 담당하도록 편제
  시험 포인트
  • 노비안검법의 목적: 호족 세력 약화 + 국가 재정 확충 + 왕권 강화 세 가지를 함께 기억하기
  • 광종의 정책(왕권 강화) vs 성종의 정책(유교적 통치 체제 확립)을 구분하기
  • 시무 28조 → 12목 설치 → 2성 6부 정비의 흐름을 순서대로 암기하기

주요 인물

광종
고려 4대 왕

노비안검법·과거제·칭제건원 등 과감한 정책으로 왕권을 크게 강화한 개혁 군주.

쌍기
귀화 관료(후주 출신)

후주에서 귀화한 문신으로, 과거제 도입을 건의해 고려 관료제의 방향을 바꿈.

성종
고려 6대 왕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과 2성 6부·12목 체제를 완성한 왕.

최승로
유학자 · 문신

시무 28조를 올려 성종대 유교적 통치 체제 확립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광종(4대)노비안검법(956) · 과거제(958) · 칭제건원 · 백관공복 — 왕권 강화
경종(5대)전시과 실시(976) — 토지 제도의 출발
성종(6대)시무 28조 수용(982) · 12목 설치(983) · 2성 6부·국자감 정비 — 유교 통치 체제 완성
핵심 인물쌍기(과거제) · 최승로(시무 28조)
의의호족 연합적 국가 → 왕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전환
"왕건이 세운 뼈대에, 광종은 힘을 주고 성종은 틀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