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프로젝트 대시보드
광종·성종 — 고려를 완성하다
광종과 성종 — 왕권 강화에서 유교 통치 체제까지
건국 직후 불안정했던 고려를 중앙집권 국가로 완성시킨 두 왕
| 광종(4대) | 949년 즉위. 왕권을 위협하던 개국공신·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 강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 |
| 경종(5대) | 976년 전시과 제정 — 관료에게 토지 수조권을 지급하는 토지 제도의 기틀 마련(광종~성종 사이 과도기) |
| 성종(6대) | 981년 즉위.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에 기반한 중앙집권 통치 체제를 완성 |
| 의의 | 왕건이 세운 나라의 뼈대에 광종이 왕권이라는 '중심'을, 성종이 제도라는 '틀'을 세워 넣은 시기 |
왕건이 죽은 뒤 혜종(2대)·정종(3대) 대에는 여전히 호족과 공신들의 힘이 왕권보다 강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왕규의 난(945)처럼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호족 간 무력 다툼까지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4대 왕으로 즉위한 광종은 강력한 왕권 강화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후삼국 전쟁과 호족들의 사적 지배 과정에서 불법으로 노비가 된 양인이 많았습니다. 광종은 이들을 조사해 원래 신분인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권 조치가 아니라, 호족들이 보유한 노비(=사병·경제력의 원천)를 줄여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조세·역 부담자 확대)을 늘리는 정치적 목적이 강한 정책이었습니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전까지 관직은 대체로 호족·공신 가문의 세습·추천으로 채워졌지만, 과거제는 시험 성적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왕에게 충성하는 신진 세력을 육성할 통로가 되었습니다.
성종이 즉위 직후 신하들에게 정책 건의를 구하자, 유학자 최승로가 신라 멸망의 원인과 고려 초 정치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28개조의 개혁안을 올렸습니다(현재 22개조만 전해짐). 핵심은 유교적 통치 이념 확립과 지방관 파견을 통한 중앙집권 강화였으며, 동시에 지나친 불교 행사 억제도 건의했습니다. 성종은 이를 대부분 수용해 이후 개혁의 청사진으로 삼았습니다.
| 기구 | 역할 |
|---|---|
| 2성(중서문하성·상서성) | 중서문하성은 국가 최고 정책 심의, 상서성은 6부를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최고 행정 기구 |
| 6부(이·병·호·형·예·공) | 각 분야 행정 실무를 담당 — 오늘날 정부 부처와 유사한 역할 |
| 중추군(중추원) |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담당 |
| 삼사 | 화폐·곡식의 출납 등 재정 회계를 담당 |
| 12목 | 지방 주요 거점에 지방관(목사) 파견 — 호족이 독점하던 지방 통치에 중앙 권한이 처음 미침 |
| 향리 제도 |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은 토착 향리가 실무 행정을 담당하도록 편제 |
노비안검법·과거제·칭제건원 등 과감한 정책으로 왕권을 크게 강화한 개혁 군주.
후주에서 귀화한 문신으로, 과거제 도입을 건의해 고려 관료제의 방향을 바꿈.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과 2성 6부·12목 체제를 완성한 왕.
시무 28조를 올려 성종대 유교적 통치 체제 확립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
| 항목 | 내용 |
|---|---|
| 광종(4대) | 노비안검법(956) · 과거제(958) · 칭제건원 · 백관공복 — 왕권 강화 |
| 경종(5대) | 전시과 실시(976) — 토지 제도의 출발 |
| 성종(6대) | 시무 28조 수용(982) · 12목 설치(983) · 2성 6부·국자감 정비 — 유교 통치 체제 완성 |
| 핵심 인물 | 쌍기(과거제) · 최승로(시무 28조) |
| 의의 | 호족 연합적 국가 → 왕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전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