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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고려의 몰락
고려, 474년 만에 막을 내리다
위화도 회군(1388)에서 조선 건국(1392)까지, 왕조 교체의 마지막 4년
| 배경 | 우왕 대 이인임 등 권문세족이 재집권, 왜구·홍건적 창궐 속 최영·이성계가 무장으로 성장 |
| 위화도 회군(1388) | 명의 철령위 통보로 요동 정벌군이 파견되었으나, 이성계가 압록강 위화도에서 회군해 실권 장악 |
| 전제 개혁(1391) | 과전법을 실시해 권문세족의 대농장을 혁파하고 신진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마련 |
| 멸망(1392) | 정몽주 제거(4월) → 공양왕 폐위(7월) → 이성계 즉위, 국호를 조선으로 정함 |
공민왕이 시해된 뒤 어린 우왕이 즉위하자, 권문세족 이인임이 권력을 장악하며 개혁 동력은 사실상 멈췄습니다. 그러나 이 혼란기에도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은 계속되었고, 이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최영과 이성계라는 두 무장이 백성들의 신망을 얻으며 급부상했습니다.
| 전투 | 내용 |
|---|---|
| 홍산대첩(1376) | 최영이 충남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 |
| 진포대첩(1380) |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해 왜구 선단을 격파(화약 무기의 첫 실전 활용) |
| 황산대첩(1380) | 이성계가 전라도 황산에서 왜구를 대파, 최고 무장으로서의 명성을 확립 |
| 대마도 정벌(1389) | 박위가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 |
명이 철령 이북 땅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은 이에 반발해 요동 정벌을 결정했습니다.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 등 네 가지 이유(4불가론)를 들어 반대했지만 왕명에 따라 출병했습니다. 그러나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켰습니다. 이는 사실상 고려 멸망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이성계 세력은 우왕과 그 아들 창왕을 '신돈의 자손이라 왕씨가 아니다'라는 논리(폐가입진)로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세워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이어 1391년에는 과전법을 실시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쌓은 대농장을 없애고, 이를 통해 신진사대부·신흥 무장 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확립했습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신진사대부는 고려 왕조를 유지한 채 개혁하자는 온건파(정몽주)와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세우자는 급진파(정도전·조준)로 갈라졌습니다. 정몽주가 이성계 세력을 제거하려 하자, 이방원이 선수를 쳐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했습니다. 이로써 역성혁명을 막을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졌습니다.
정몽주 제거 두 달 뒤, 이성계는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습니다(자세한 이야기는 「조선 제1대 왕 이성계」 편 참고). 918년 왕건이 세운 고려는 이렇게 47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요동 정벌을 주도한 실권자였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세력에 제거됨.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1392년 조선을 세워 태조가 됨.
고려 왕조를 유지한 채 개혁하자고 주장하다 1392년 선죽교에서 살해됨.
역성혁명을 주도한 설계자로, 조선 건국 후 통치 체제와 한양 도성을 설계함.
| 항목 | 내용 |
|---|---|
| 배경 | 우왕 즉위, 이인임 집권 · 최영·이성계의 왜구 격퇴로 무장 세력 성장 |
| 결정적 사건 | 위화도 회군(1388) → 폐가입진(1389) → 과전법(1391) → 정몽주 피살(1392.4) |
| 멸망 | 1392년 7월, 공양왕 폐위 · 이성계 즉위 · 국호 조선 |
| 고려 역사 | 918년(왕건 건국) ~ 1392년(멸망), 총 474년 |
| 이어지는 이야기 | 「조선 제1대 왕 이성계(태조)」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