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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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6대 왕

이홍위 조선 제6대 왕 묘호 단종(端宗) 재위 1452~1455 계유정난 · 사육신

한눈에 보기

단종 이홍위 (端宗 李弘暐)

문종의 외아들 · 조선 제6대 국왕 · 12세에 즉위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운의 왕

1441년출생년도
1452년재위 시작
1455년재위 종료(양위)
1457년사망년도
향년 17세(세는나이)
약 3년재위 기간
출생1441년(세종 23년) 음력 7월 23일, 경복궁. 문종의 외아들.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 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사망
재위 시작1452년 5월 — 문종 승하 직후 12세의 나이로 즉위
재위 종료1455년 윤6월 — 숙부 수양대군에게 사실상 강제로 왕위를 물려줌(양위)
사망1457년 음력 10월 24일, 강원도 영월에서 사사(賜死)됨
나이(향년)세는나이 17세
능장릉(莊陵), 현재 강원도 영월군
  왜 비극적인 왕으로 불릴까?
  • 아버지 문종이 일찍 승하하며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즉위
  •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보좌하던 신하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
  • 결국 숙부에게 왕위를 넘기고, 신하들의 복위 시도가 발각되며 사사(賜死)당함
  • 사후 241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에야 '단종'으로 복위되고 묘호를 받음

이름과 호칭

단종은 죽은 뒤 왕이 아닌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오랫동안 불렸습니다. '단종'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되찾기까지 24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본명(휘)이홍위(李弘暐)
봉작 이력왕세손(1448) → 왕세자(1450) → 국왕(1452) → 상왕(1455) → 노산군으로 강봉(1457)
묘호(廟號)단종(端宗) — 사후 즉시 받지 못하고 1698년(숙종 24년)에 복위되며 정식으로 받음
그 사이의 호칭약 240년간 '노산군' 또는 '노산군일기' 등으로 격하되어 기록됨
  헷갈리기 쉬운 포인트
  • 정종의 묘호 추상(1681)과 단종의 복위(1698)를 혼동하지 않기 — 둘 다 숙종 때 이루어졌지만 별개의 사건
  • 단종실록은 복위 전까지 '노산군일기'라는 이름으로 편찬·보관되었음

가계도 — 이홍위(단종)를 중심으로

부모는 문종 이향과 현덕왕후 권씨로 문종 편과 동일합니다. 단종은 17세에 세상을 떠나 자녀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문종 이향
아버지 (조선 제5대 왕)
현덕왕후 권씨
어머니 (출산 직후 사망)
이홍위
단종 (본인)
정순왕후 송씨
왕비(1454년 책봉)
소생 없음
숙의 김씨 · 숙의 권씨
후궁 2명
소생 없음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단종은 17세에 사사되어 자녀를 남기지 못함 → 직계 후손이 없음
  • 왕비 정순왕후 송씨는 단종 사후 평민 신분으로 강등되었다가 82세까지 장수하며 여생을 보냄(1521년 사망)
  • 단종의 후계는 사실상 숙부인 세조가 이어받음

생애 타임라인

1441년
출생 · 모친 사망
문종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머니 현덕왕후가 출산 후유증으로 곧 세상을 떠남.
1448년
왕세손 책봉
할아버지 세종 재위 말년, 8세의 나이로 왕세손에 책봉됨.
1450년
왕세자 책봉
아버지 문종이 즉위하며 왕세자로 다시 책봉됨.
1452년
즉위
문종이 갑작스레 승하하며 12세의 나이로 즉위. 김종서·황보인 등 고명대신이 국정을 보좌.
1453년
계유정난
숙부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김종서·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병권과 정권을 장악.
1454년
왕비 책봉
정순왕후 송씨를 왕비로 맞이함.
1455년
세조에게 선위
수양대군의 압박 속에 사실상 강제로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남.
1456년
사육신의 복위 시도
성삼문·박팽년 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됨(사육신 사건).
1457년
노산군 강봉 · 사사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이어진 금성대군의 2차 복위 시도가 발각되며 사사됨(향년 17세).
1698년
단종으로 복위
241년이 지난 숙종 24년,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정식 복위되어 묘호와 왕의 지위를 되찾음.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계유정난 (1453)

문종이 남긴 고명대신 김종서·황보인 등이 어린 단종을 보좌하며 정국을 이끌자, 숙부 수양대군은 이들이 권력을 남용한다는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켜 김종서·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병권과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② 선위(양위) — 사실상의 왕위 찬탈 (1455)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잃은 단종은 결국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선위'였지만, 사실상 강요된 양위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③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1456)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세종·문종 대의 신하들이 상왕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이들을 후세에 사육신(死六臣)이라 부릅니다.

④ 노산군 강봉과 영월 유배, 사사 (1457)

사육신 사건 이후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신분이 낮아져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이어 숙부 금성대군이 다시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자, 세조는 단종에게 죽음을 내려(사사) 후환을 없앴습니다.

⑤ 사후 복위 (1698)

단종의 비극은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언급되기 어려웠으나, 241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년)에 이르러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정식 복위되고 묘호와 왕릉(장릉)의 격을 되찾았습니다.

  시험 포인트
  • 계유정난(1453) → 선위(1455) → 사육신 사건(1456) → 사사(1457)의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기
  • 계유정난의 주체는 수양대군이며, 희생된 신하는 김종서·황보인임을 기억하기
  • 사육신(성삼문 등, 복위 시도로 처형)과 생육신(벼슬을 버리고 절의를 지킨 신하들)을 구분하기
  • 단종의 복위는 사후 241년이 지난 숙종 때 이루어졌다는 사실

주요 인물

수양대군 (세조)
숙부 · 7대 왕

계유정난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고,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 세조로 즉위.

김종서 · 황보인
고명대신

어린 단종을 보좌하던 원로 대신들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됨.

성삼문 · 박팽년 등
사육신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처형된 세종·문종 대의 충신들.

금성대군
숙부 · 2차 복위 시도

유배지에서 다시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발각되어 사사됨. 이 사건이 단종의 죽음으로 이어짐.

정순왕후 송씨
왕비

단종 사후 평민으로 강등되었다가 82세까지 장수. 훗날 왕비로 복권됨.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이름이홍위(李弘暐) / 사후 '노산군'으로 강봉 → 1698년 '단종'으로 복위
출생~사망1441년 ~ 1457년 (향년 17세)
재위 기간1452년 ~ 1455년 (약 3년), 12세에 즉위
결정적 사건계유정난(1453) → 세조에게 선위(1455) → 사육신 사건(1456) → 사사(1457) → 복위(1698)
가족정순왕후 송씨(자녀 없음) · 후궁 2명(자녀 없음)
후계세조(7대, 숙부 수양대군)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해, 가장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