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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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7대 ·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이척 조선 제27대 ·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묘호 순종(純宗) · 연호 융희(隆熙) 재위 1907~1910 경술국치로 국권 상실

한눈에 보기

순종 이척 (純宗 李坧)

고종의 아들 · 대한제국 제2대(마지막) 황제 ·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

1874년출생년도
1907년재위 시작
1910년재위 종료(국권 상실)
1926년사망년도
향년 53세(세는나이)
약 3년재위 기간
출생1874년(고종 11년) 음력 2월, 창덕궁.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아들
세자 책봉1875년, 2세에 왕세자로 책봉
재위 시작1907년 7월 —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강요, 33세로 즉위(대한제국 융희황제)
재위 종료1910년 8월 —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으로 국권 완전 상실
사망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사망
나이(향년)세는나이 53세
능유릉(裕陵),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왜 조선왕조사의 마지막 페이지일까?
  • 아버지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뒤 그 뒤를 이어 즉위
  • 재위 내내 한일신협약(차관정치·군대해산) → 기유각서(사법권 박탈) → 한일병합(경술국치)으로 이어지는 국권 피탈 과정을 겪음
  • 1910년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며 27대 519년에 걸친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
  • 병합 후 황제가 아닌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어 여생을 보냈고, 그의 죽음(1926)은 6·10만세운동의 계기가 됨

태조(1392)부터 순종(1910)까지, 27대에 걸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사를 이 편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름과 호칭

순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아버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기 때문에, 순종은 '왕'이 아닌 '황제'로 즉위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본명(휘)이척(李坧)
봉작왕세자(1875) → 황태자(1897, 대한제국 선포 후) → 황제(1907)
연호(年號)융희(隆熙) —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
묘호(廟號)순종(純宗) — 대한제국 황실에 의해 사후 추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황실과 후대에는 통용됨
병합 이후 지위'이왕(李王)'으로 격하 — 창덕궁에 거주하며 왕공족 신분으로 여생을 보냄

가계도 — 이척(순종)을 중심으로

부모는 고종 편에 등장하는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입니다. 첫 왕비 순명효황후는 즉위 전에 사망했고, 계비 순정효황후와의 사이에도 후사가 없어 조선 왕실의 직계 혈통은 순종 대에서 사실상 단절됩니다.

고종 이형
아버지 (대한제국 초대 황제)
명성황후 민씨
어머니
이척
순종 (본인)
순명효황후 민씨
초비 · 1904년 즉위 전 사망
순정효황후 윤씨
계비 · 소생 없음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초비 순명효황후는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인 1904년에 이미 사망함
  • 계비 순정효황후와의 사이에도 후사가 없어, 순종에게는 왕위를 이을 직계 자손이 없었음
  • 1910년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후계자를 논할 국가 자체가 사라짐 — 조선왕조 직계 왕통은 순종에서 단절됨

생애 타임라인

1874년
출생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로 출생.
1875년
왕세자 책봉
2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됨.
1907년 7월
즉위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강요, 그 뒤를 이어 33세로 즉위. 연호를 융희로 정함.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일본인 차관이 각 부처에 임명되는 '차관정치'가 시작되고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됨. 해산 군인들의 저항이 정미의병으로 이어짐.
1909년
기유각서 · 안중근 의거
기유각서로 사법권과 감옥 사무 처리권을 일본에 박탈당함. 같은 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어 국권을 완전히 상실. 27대 519년에 걸친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
1910년 이후
'이왕' 신분으로 여생
황제가 아닌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어 창덕궁에 거주하며 왕공족 신분으로 지냄.
1926년 4월
사망 · 6·10만세운동
창덕궁에서 사망(향년 53세). 그의 인산일(장례일)에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일으켜 6·10만세운동의 계기가 됨.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즉위와 헤이그 특사 사건의 여파

아버지 고종이 을사늑약(1905)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 특사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일본은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습니다. 순종은 이러한 정치적 압박 속에서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② 국권 피탈의 마지막 단계

순종 재위 3년간 국권은 단계적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한일신협약(1907)으로 차관정치와 군대 해산이 이루어지고, 기유각서(1909)로 사법권마저 박탈당했으며, 끝내 한일병합조약(1910)으로 국권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③ 안중근 의거와 항일 저항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한 사건은, 국권 침탈에 맞선 대표적인 항일 의거로 기억됩니다. 군대 해산에 반발한 군인들이 일으킨 정미의병 등 각지의 저항도 이 시기에 이어졌습니다.

④ 경술국치와 왕조의 종언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며 대한제국은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1392년 태조 이성계의 건국부터 이어진 27대 519년의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시험 포인트
  • 국권 피탈의 순서를 한일신협약(1907, 차관정치·군대해산) → 기유각서(1909, 사법권 박탈) → 한일병합조약(1910, 경술국치) 순으로 정확히 기억하기
  •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1909)을 이 시기의 대표적 항일 의거로 기억하기
  • 순종의 죽음(1926)이 6·10만세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고종의 죽음(1919)이 3·1운동의 계기가 된 것과 대비해서 기억하기
  • 조선왕조는 태조(1392)부터 순종(1910)까지 27대 519년간 이어졌다는 전체 왕조사의 큰 흐름을 정리하기

주요 인물

고종 이형
아버지 · 대한제국 초대 황제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당하며 순종에게 황위를 넘김.

이토 히로부미
초대 통감

대한제국 국권 침탈을 주도하다 1909년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함.

안중근
독립운동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항일 의지를 세계에 알림.

순정효황후 윤씨
계비

병합 조약 체결을 막으려 옥새를 감췄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마지막 황후.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이름이척(李坧) · 연호 융희 · 묘호 순종
출생~사망1874년 ~ 1926년 (향년 53세)
재위 기간1907년 ~ 1910년 (약 3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결정적 사건즉위(1907) → 한일신협약(1907) → 안중근 의거·기유각서(1909) → 한일병합·경술국치(1910)
가족순명효황후(즉위 전 사망) · 순정효황후(소생 없음)
후계없음 — 1910년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 멸망
"27대 519년, 그 마지막 장을 조용히 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