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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7대 왕
세조 이유 (世祖 李瑈)
세종의 둘째 아들 · 조카 단종의 왕위를 이어받은 조선 제7대 국왕
| 출생 | 1417년(태종 17년) 음력 9월, 한양. 세종의 둘째 아들, 문종의 동생 |
| 재위 시작 | 1455년 윤6월 —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선위) 즉위 |
| 재위 종료 | 1468년 9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468년 음력 9월 8일, 수강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52세 — 즉위 당시는 만 37세 |
| 능 | 광릉(光陵),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
즉위 전 가장 널리 알려진 호칭은 수양대군입니다. 봉작이 여러 차례 바뀐 뒤 마지막으로 수양대군에 봉해졌다가 왕이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 본명(휘) | 이유(李瑈) |
| 자(字) | 수지(粹之) |
| 봉작 이력 | 진평대군 → 함평대군 → 진양대군 → 수양대군(首陽大君) → 국왕 |
| 묘호(廟號) | 세조(世祖) |
| 시호(諡號) | 혜장대왕(惠莊大王) 등이 포함된 긴 시호로 불림 |
부모는 세종 이도와 소헌왕후 심씨로 세종 편과 동일하며, 문종의 바로 아래 동생입니다. 정비 정희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 훗날의 예종입니다.
숙부로서 어린 조카 단종을 보좌해야 할 위치였던 수양대군은, 김종서·황보인 등 고명대신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통해 실권을 장악하고 2년 뒤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았습니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시도, 이어진 금성대군의 2차 시도를 모두 진압하며 왕권에 대한 도전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종은 결국 사사되었습니다.
세종 대의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하고, 아버지 세종 이전 태종이 시행했던 6조직계제로 되돌려 왕이 6조를 직접 통솔하도록 했습니다. 신하들의 견제를 줄이고 왕권을 극대화한 조치입니다.
관리들에게 나눠주던 토지(과전)가 점점 부족해지자,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해 국가 재정과 토지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함길도 토호 이시애가 중앙 집권 강화 정책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방에 대한 중앙 통제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 작업을 시작했으며(완성·반포는 성종 대),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불교 진흥에도 힘썼습니다.
세조의 정비로 예종과 의경세자(추존 덕종)를 낳음. 훗날 손자 성종 즉위 시 수렴청정을 함.
계유정난을 함께 계획한 핵심 참모로, 이후에도 세조를 도와 권력을 유지시킴.
집현전 학자 출신이지만 세조 편에 서서 계유정난 이후에도 중용됨.
단종을 보좌하던 고명대신으로 계유정난 때 세조 세력에게 제거됨.
1467년 중앙 집권 강화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어 처형됨.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유(李瑈) · 수양대군 · 묘호 세조 |
| 출생~사망 | 1417년 ~ 1468년 (향년 52세) |
| 재위 기간 | 1455년 ~ 1468년 (약 13년) |
| 결정적 사건 | 계유정난(1453) → 즉위(1455) → 사육신 진압·단종 사사(1456~1457) → 6조직계제(1461) → 직전법(1466) → 이시애의 난(1467) |
| 가족 | 정비 정희왕후 윤씨(2남 1녀, 의경세자·예종) · 후궁 근빈 박씨 등(서자 2명) |
| 후계 | 예종(8대, 둘째 아들 해양대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