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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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대 왕

이방과 조선 제2대 왕 묘호 정종(定宗) 재위 1398~1400 개경 환도 · 사병혁파

한눈에 보기

정종 이방과 (定宗 李芳果)

태조의 둘째 아들 · 조선 제2대 국왕 ·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초기 왕 중 한 명

1357년출생년도
1398년재위 시작
1400년재위 종료(양위)
1419년사망년도
향년 63세(세는나이)
약 2년재위 기간
출생1357년(고려 공민왕 6년), 함경도 영흥.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
재위 시작1398년 9월 5일 — 제1차 왕자의 난 직후 아버지 태조로부터 양위받아 즉위
재위 종료1400년 11월 13일 — 동생 방원(태종)에게 양위
사망1419년 음력 9월 26일, 인덕궁(仁德宮)에서 승하
나이(향년)세는나이 63세 — 즉위 당시는 만 41세
능후릉(厚陵), 현재 북한 개성 소재
  왜 기억해야 할까?
  • 1차 왕자의 난으로 아버지가 물러나며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임시적 성격이 강한 왕
  • 실권은 사실상 동생 방원(훗날 태종)이 쥐고 있었음
  • 재위 중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고(개경 환도), 왕자·종친의 사병을 없애는(사병혁파) 등 중요한 제도 정비가 이뤄짐
  • 사후 오랫동안 '정종'이라는 묘호 없이 공정왕(恭靖王)으로만 불리다가, 262년 뒤인 1681년(숙종 7년)에야 정식으로 묘호를 받음

이름과 호칭

정종은 묘호를 뒤늦게 받은 왕이라는 점이 시험에 자주 나옵니다. 오랫동안 '공정왕'으로만 불렸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본명(휘)이방과(李芳果) — 즉위 후 이경(李曔)으로 개명
자(字)광원(光遠)
봉작조선 개국 초 영안군(永安君)에 봉해짐
묘호(廟號)정종(定宗) — 사후 즉시 받지 못하고, 1681년(숙종 7년)에야 추상(追上)됨
시호(諡號)명에서 내려준 시호 공정왕(恭靖王)으로 조선 후기까지 오랫동안 불림
  헷갈리기 쉬운 포인트
  • "정종"이라는 이름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직후에는 쓰이지 않았고, 조선 후기 실록·족보에도 오래도록 "공정왕"으로 기록됨
  • 동생 태종이 정통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형의 묘호 추존이 미뤄졌다는 해석이 있음

가계도 — 이방과(정종)를 중심으로

부모는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로 태조 편과 동일합니다. 정비 정안왕후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대신 여러 후궁 사이에서 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태조 이성계
아버지 (조선 제1대 왕)
신의왕후 한씨
어머니
이방과
정종 (본인)
정안왕후 김씨
정비(왕비)
소생 없음
후궁 9명
성빈 지씨 외
약 17남 8녀 (기록마다 차이)
의평군
원생(元生)
순평군
군생(群生)
금평군
의생(義生)
정석군
융생(隆生)
무림군
선생(善生)
종의군
귀생(貴生)
그 외
다수의 군·옹주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정비 정안왕후 김씨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음 → 이 때문에 왕위는 정종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 방원(태종)에게 이어짐
  • 대신 9명의 후궁 사이에서 17남 8녀에 이르는 많은 자녀를 둔 것으로 전해짐(정확한 숫자는 사료마다 차이)
  • 정비 소생 적장자가 없었다는 점이 방원이 권력을 이어받는 명분 중 하나가 됨

생애 타임라인

1357년
출생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함경도 영흥에서 출생.
1392년
영안군 책봉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영안군(永安君)에 봉해짐.
1398년
즉위
동생 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 직후,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곧바로 태조의 양위를 받아 조선 제2대 왕으로 즉위.
1399년
개경 환도
왕자의 난으로 어수선해진 한양의 민심과 정세를 이유로 도읍을 다시 개경(개성)으로 옮김.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 세제 책봉
넷째 방간과 다섯째 방원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방원이 승리하여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됨.
1400년
사병혁파
방원의 주도로 왕자·종친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던 사병(私兵)을 없애고 병권을 국가 기구로 모음.
1400년 11월
양위
왕세제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남.
1419년
승하
인덕궁에서 세상을 떠남(향년 63세). 후릉에 안장.
1681년
묘호 추상
승하한 지 262년 만인 숙종 7년에 이르러서야 '정종(定宗)'이라는 묘호를 정식으로 받음.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즉위 배경 — 제1차 왕자의 난 (1398)

동생 방원이 세자 방석과 정도전 등을 제거한 직후, 태조는 정치적 충격 속에서 살아남은 아들 중 맏이 격이던 방과(정종)를 세자로 세우고 곧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정종의 즉위는 방원이 아직 명분상 직접 왕위에 오르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나온 과도기적 성격이 강합니다.

② 개경 환도 (1399)

태조가 힘써 옮긴 한양이었지만, 왕자의 난이라는 유혈 사태를 겪은 한양에 대한 불안감과 개경 세력의 요청 등으로 정종은 즉위 이듬해 도읍을 다시 개경으로 옮겼습니다. 한양은 이후 태종 때(1405년) 다시 도읍으로 확정됩니다.

③ 제2차 왕자의 난과 사병혁파 (1400)

방간(회안대군)이 박포 등의 부추김을 받아 방원에 맞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패배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방원은 왕세제로 책봉되어 후계자 지위를 확정했고, 왕자·종친이 개별적으로 보유하던 사병을 혁파하여 병권을 국가로 집중시켰습니다. 이는 이후 왕권 강화의 중요한 제도적 토대가 됩니다.

④ 태종에게 양위 (1400)

정비 사이에 후사가 없었던 정종은 1400년 11월, 왕세제 방원에게 왕위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19년을 더 살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⑤ 묘호를 늦게 받은 왕

정종은 사후 곧바로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지 못하고 명나라가 내린 시호인 공정왕으로만 불렸습니다. 실권을 쥐었던 태종과 그 후손들 입장에서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묘호 추상이 미뤄졌다는 해석이 있으며, 결국 1681년(숙종 7년)에 이르러서야 정식 묘호를 받았습니다.

  시험 포인트
  • 정종의 즉위와 퇴위는 모두 왕자의 난(1·2차)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기
  • 개경 환도(정종) → 한양 재천도(태종)의 순서를 태조의 최초 한양 천도와 헷갈리지 않기
  • 사병혁파는 정종 재위 시기에 방원의 주도로 이루어진 사건임을 기억하기
  • 정종 = 공정왕(생전·사후 오랫동안의 호칭)이라는 사실

주요 인물

이방원 (태종)
동생 · 3대 왕

정종 재위 기간 내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 인물. 2차 왕자의 난 승리 후 왕세제가 되었고,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

방간 (회안대군)
동생 · 2차 왕자의 난 주동

태조의 넷째 아들. 박포의 부추김을 받아 방원에 맞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패배, 이후 유배됨.

정안왕후 김씨
정비(왕비)

정종의 왕비로 사이에 자녀가 없었음. 이는 왕위가 방원 쪽으로 넘어가는 배경 중 하나가 됨.

박포
2차 왕자의 난의 발단

방간에게 거병을 부추긴 인물로 알려짐. 난이 실패한 뒤 처형됨.

하륜
방원의 책사

방원을 보좌한 핵심 참모로, 정종 재위기 사병혁파 등 제도 정비를 함께 추진.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이름이방과 → 즉위 후 이경(李曔) / 묘호 정종(사후 283년 뒤인 1681년 추상)
출생~사망1357년 ~ 1419년 (향년 63세)
재위 기간1398년 ~ 1400년 (약 2년), 실권은 동생 방원이 장악
결정적 사건1차 왕자의 난으로 즉위 → 개경 환도(1399) → 2차 왕자의 난·사병혁파(1400) → 양위
가족정비 정안왕후 김씨(자녀 없음) · 후궁 9명 사이 17남 8녀(전언)
후계태종(3대, 동생 방원)
"왕좌에 앉았으나 권력은 동생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