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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7대 왕
효종 이호 (孝宗 李淏)
인조의 둘째 아들 · 소현세자의 동생 · 청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북벌을 추진한 조선 제17대 국왕
| 출생 | 1619년(광해군 11년) 음력 5월, 한양.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에 봉해짐 |
| 세자 책봉 | 1645년(인조 23년) — 형 소현세자가 급사하자 세자로 책봉 |
| 재위 시작 | 1649년 5월 — 인조 승하 직후 31세로 즉위 |
| 재위 종료 | 1659년 5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659년 음력 5월 4일, 창덕궁에서 종기 치료 중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41세 |
| 능 | 영릉(寧陵), 현재 경기도 여주시 |
효종은 원래 세자가 아니었으나, 형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자가 된 경우입니다. 즉위 전 봉작인 봉림대군과 청에서의 볼모 생활을 함께 기억해두세요.
| 본명(휘) | 이호(李淏) |
| 봉작 | 봉림대군(鳳林大君) → 왕세자(1645) → 국왕 |
| 묘호(廟號) | 효종(孝宗) |
| 시호(諡號) | 선문장무신성현인대왕(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 |
부모는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로 인조 편과 이어집니다. 형 소현세자가 청에서 귀국한 뒤 의문사하면서, 원래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려나 있던 효종이 세자가 되어 즉위했습니다.
청에서 겪은 굴욕을 되갚겠다는 북벌론을 국정 이념으로 내세우고, 송시열·송준길 등 서인 산림 세력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어영청을 강화하는 등 군비를 확충했지만, 청의 국력이 워낙 강성해 실제 북벌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은 청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나선) 세력을 정벌하는 데 두 차례 조총부대를 파병했습니다. 변급·신류가 이끈 조선군은 흑룡강 유역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습니다.
김육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해군 대에 경기도에서 시작된 대동법을 충청도와 전라도로 확대했습니다. 또한 청에서 들여온 서양식 역법인 시헌력을 채택해 역법을 개편했습니다.
얼굴에 난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어의 신가귀가 침을 놓았는데, 출혈이 멈추지 않아 갑작스럽게 승하했습니다. 북벌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재위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벌론을 뒷받침한 대표적 산림 학자로, 효종 대 정국의 중심 인물.
대동법을 충청·전라도로 확대하도록 건의해 백성의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
두 차례의 나선정벌에서 조총부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교전.
함께 청에 볼모로 있었으나 귀국 후 급사, 효종이 세자가 되는 계기가 됨.
효종의 유일한 아들로 무난히 왕위를 이었으나, 즉위 초 예송논쟁을 겪음.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호(李淏) · 봉작 봉림대군 · 묘호 효종 |
| 출생~사망 | 1619년 ~ 1659년 (향년 41세) |
| 재위 기간 | 1649년 ~ 1659년 (약 10년) |
| 결정적 사건 | 청 볼모(1637~45) → 즉위·북벌 준비(1649) → 대동법 확대(1651~58) → 나선정벌(1654, 1658) → 승하(1659) |
| 가족 | 인선왕후 장씨(1남 6녀, 현종) |
| 후계 | 현종(18대, 외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