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에듀테크 프로젝트 대시보드

조선 제18대 왕

이연 조선 제18대 왕 묘호 현종(顯宗) 재위 1659~1674 기해예송·갑인예송 · 경신대기근

한눈에 보기

현종 이연 (顯宗 李棩)

효종의 외아들 · 조선 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에서 태어난 제18대 국왕

1641년출생년도
1659년재위 시작
1674년재위 종료(승하)
1674년사망년도
향년 34세(세는나이)
약 15년재위 기간
출생1641년(인조 19년) 음력 2월, 청나라 심양의 심양관. 봉림대군(훗날 효종)이 볼모 생활 중 얻은 아들
세자 책봉1651년(효종 2년) — 11세에 왕세자로 책봉
재위 시작1659년 5월 — 효종 승하 직후 19세로 즉위
재위 종료1674년 8월 — 재위한 채로 승하
사망1674년 음력 8월 18일, 창덕궁에서 승하
나이(향년)세는나이 34세
능숭릉(崇陵), 현재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왜 '예송논쟁'의 왕으로 기억될까?
  • 조선 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 심양)에서 태어난 인물로, 부모의 볼모 생활 중 출생
  • 재위 기간 내내 계모 항렬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둘러싼 두 차례의 예송논쟁으로 서인·남인이 격돌
  • 후궁을 두지 않고 왕비 한 명만 둔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몇 안 되는 왕
  • 재위 후반 대기근(경신대기근)으로 전국적인 참상을 겪음

이름과 호칭

현종은 아버지 효종이 청에 볼모로 잡혀 있던 시절 태어난 특별한 배경을 지녔습니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궐이 아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세요.

본명(휘)이연(李棩)
봉작세손 격 신분(볼모지 출생) → 왕세자(1651) → 국왕
묘호(廟號)현종(顯宗)
시호(諡號)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

가계도 — 이연(현종)을 중심으로

부모는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로 효종 편과 이어집니다. 후궁 없이 왕비 명성왕후와의 사이에서만 자녀를 두었고, 외아들 숙종이 무난히 왕위를 이었습니다.

효종 이호
아버지 (조선 제17대 왕)
인선왕후 장씨
어머니
이연
현종 (본인)
명성왕후 김씨
왕비(유일한 배우자)
1남 3녀
숙종
외아들 · 세자 → 19대 왕
명선·명혜·명안공주
세 딸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현종은 조선 왕 중 드물게 후궁 없이 왕비 한 명만 두었던 것으로 알려짐
  • 외아들 숙종이 유일한 적통 후계자로서 무난히 왕위를 이음 — 후계 다툼이 없었던 드문 사례
  • 할머니뻘인 자의대비(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상복 문제가 현종 대 정치를 뒤흔든 예송논쟁의 핵심 인물

생애 타임라인

1641년
출생 (청 심양)
봉림대군(훗날 효종)이 청에 볼모로 있던 심양관에서 출생. 조선 왕 중 유일한 외국 출생 사례.
1645년
귀국
부모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옴.
1651년
왕세자 책봉
11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됨.
1659년
즉위 · 기해예송
효종 승하 직후 19세로 즉위. 곧이어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둘러싼 첫 번째 예송논쟁(기해예송)이 벌어져 서인의 기년설(1년복)이 채택됨.
1670~1671년
경신대기근
이상기후로 인한 대흉작과 전염병이 겹쳐 전국적으로 수많은 백성이 사망하는 참상이 발생.
1674년
갑인예송
효종비 인선왕후가 사망하자 자의대비의 상복을 둘러싼 두 번째 예송논쟁이 벌어짐. 이번에는 남인의 기년설(1년복)이 채택되어 서인이 크게 위축됨.
1674년 8월
승하
재위 15년 만에 승하(향년 34세). 외아들 숙종이 왕위를 이음.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기해예송과 갑인예송 — 두 차례의 예송논쟁

현종 대 정치를 지배한 것은 상복 기간을 둘러싼 예학 논쟁, 예송논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예법 해석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효종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장자냐 차자냐)과 서인·남인 간의 권력 다툼이 걸린 사안이었습니다.

기해예송 (1659)

효종 승하 시 계모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이 쟁점. 서인은 효종을 차자(次子)로 보아 기년설(1년복)을, 남인은 장자에 준해 3년복을 주장. 서인의 주장이 채택됨.

갑인예송 (1674)

효종비 인선왕후 사망 시 다시 자의대비의 상복이 쟁점. 서인은 대공설(9개월)을, 남인은 기년설(1년)을 주장. 이번엔 남인의 주장이 채택되어 서인이 실각.

② 경신대기근 (1670~1671)

경술년과 신해년에 걸친 이상기후로 대흉작이 들고 전염병까지 창궐해,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수십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국가적 구휼 체계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③ 붕당정치의 격화

두 차례의 예송논쟁을 거치며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극심해졌고, 이는 예학 논쟁을 넘어 상대 붕당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정치 투쟁으로 발전해 다음 대인 숙종 대의 환국 정치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시험 포인트
  • 기해예송(1659, 서인 승리·기년설)과 갑인예송(1674, 남인 승리·기년설)의 쟁점 인물과 결과를 구분하기
  • 예송논쟁은 겉으로는 상복 예법 문제지만 실제로는 효종의 왕위 계승 정통성과 붕당 간 권력다툼이었음을 기억하기
  • 현종은 조선 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에서 태어난 왕이라는 점을 효종의 볼모 생활과 연결해서 기억하기
  • 경신대기근(1670~71)은 현종 대의 대표적 재해로, 이후 숙종 대 사회 정책과도 연결됨

주요 인물

자의대비 조씨
인조의 계비 · 예송의 중심

두 차례 예송논쟁 모두 그의 상복 기간을 두고 벌어짐.

송시열
서인 영수

기해예송에서 기년설을 주장해 관철시켰으나, 갑인예송에서는 입지가 좁아짐.

허목 · 윤휴
남인 학자

예송논쟁에서 서인과 대립하며 남인 측 예론을 주도.

명성왕후 김씨
왕비

현종의 유일한 배우자로, 숙종을 낳고 이후 정치에도 영향력을 행사.

숙종
외아들 · 19대 왕

현종의 유일한 아들로 왕위를 이었으며, 즉위 후 환국 정치로 붕당 갈등을 다스림.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이름이연(李棩) · 청 심양 출생 · 묘호 현종
출생~사망1641년 ~ 1674년 (향년 34세)
재위 기간1659년 ~ 1674년 (약 15년)
결정적 사건즉위·기해예송(1659) → 경신대기근(1670~71) → 갑인예송(1674) → 승하
가족명성왕후 김씨(유일한 배우자, 1남 3녀 — 숙종)
후계숙종(19대, 외아들)
"상복의 길이를 둘러싼 다툼이, 나라의 권력 지형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