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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8대 왕
현종 이연 (顯宗 李棩)
효종의 외아들 · 조선 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에서 태어난 제18대 국왕
| 출생 | 1641년(인조 19년) 음력 2월, 청나라 심양의 심양관. 봉림대군(훗날 효종)이 볼모 생활 중 얻은 아들 |
| 세자 책봉 | 1651년(효종 2년) — 11세에 왕세자로 책봉 |
| 재위 시작 | 1659년 5월 — 효종 승하 직후 19세로 즉위 |
| 재위 종료 | 1674년 8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674년 음력 8월 18일, 창덕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34세 |
| 능 | 숭릉(崇陵), 현재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
현종은 아버지 효종이 청에 볼모로 잡혀 있던 시절 태어난 특별한 배경을 지녔습니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궐이 아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세요.
| 본명(휘) | 이연(李棩) |
| 봉작 | 세손 격 신분(볼모지 출생) → 왕세자(1651) → 국왕 |
| 묘호(廟號) | 현종(顯宗) |
| 시호(諡號) | 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 |
부모는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로 효종 편과 이어집니다. 후궁 없이 왕비 명성왕후와의 사이에서만 자녀를 두었고, 외아들 숙종이 무난히 왕위를 이었습니다.
현종 대 정치를 지배한 것은 상복 기간을 둘러싼 예학 논쟁, 예송논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예법 해석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효종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장자냐 차자냐)과 서인·남인 간의 권력 다툼이 걸린 사안이었습니다.
효종 승하 시 계모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이 쟁점. 서인은 효종을 차자(次子)로 보아 기년설(1년복)을, 남인은 장자에 준해 3년복을 주장. 서인의 주장이 채택됨.
효종비 인선왕후 사망 시 다시 자의대비의 상복이 쟁점. 서인은 대공설(9개월)을, 남인은 기년설(1년)을 주장. 이번엔 남인의 주장이 채택되어 서인이 실각.
경술년과 신해년에 걸친 이상기후로 대흉작이 들고 전염병까지 창궐해,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수십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국가적 구휼 체계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두 차례의 예송논쟁을 거치며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극심해졌고, 이는 예학 논쟁을 넘어 상대 붕당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정치 투쟁으로 발전해 다음 대인 숙종 대의 환국 정치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두 차례 예송논쟁 모두 그의 상복 기간을 두고 벌어짐.
기해예송에서 기년설을 주장해 관철시켰으나, 갑인예송에서는 입지가 좁아짐.
예송논쟁에서 서인과 대립하며 남인 측 예론을 주도.
현종의 유일한 배우자로, 숙종을 낳고 이후 정치에도 영향력을 행사.
현종의 유일한 아들로 왕위를 이었으며, 즉위 후 환국 정치로 붕당 갈등을 다스림.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연(李棩) · 청 심양 출생 · 묘호 현종 |
| 출생~사망 | 1641년 ~ 1674년 (향년 34세) |
| 재위 기간 | 1659년 ~ 1674년 (약 15년) |
| 결정적 사건 | 즉위·기해예송(1659) → 경신대기근(1670~71) → 갑인예송(1674) → 승하 |
| 가족 | 명성왕후 김씨(유일한 배우자, 1남 3녀 — 숙종) |
| 후계 | 숙종(19대, 외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