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
조선 제26대 왕
대한제국 초대 황제(광무제)
재위 1863~1907
흥선대원군 · 강화도조약 · 을미사변·아관파천 · 대한제국·을사늑약
한눈에 보기
고종 이희 (高宗 李熙)
흥선대원군의 아들 · 조선의 마지막 실질적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로, 개항부터 국권 상실까지 격동의 44년을 통치
1852년출생년도
1863년재위 시작
1907년재위 종료(강제 퇴위)
1919년사망년도
향년 68세(세는나이)
약 44년재위 기간
| 출생 | 1852년(철종 3년) 음력 7월, 한양.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아들, 아명 이명복 |
| 즉위 과정 |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신정왕후(조대비)가 양자로 지명, 익종(효명세자)의 후사로 입적되어 왕위 계승 |
| 재위 시작 | 1863년 12월 — 11세(만 나이)로 즉위, 신정왕후 수렴청정 후 흥선대원군 섭정 |
| 재위 종료 | 1907년 7월 —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일본의 강요에 의해 강제 퇴위, 아들 순종에게 양위 |
| 사망 |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 독살설이 널리 퍼짐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68세 |
| 능 | 홍릉(洪陵),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
왜 조선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재위일까?
- 즉위 초 생부 흥선대원군의 섭정 아래 서원 철폐·경복궁 중건 등 강력한 개혁과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시행됨
- 강화도조약(1876)으로 개항한 뒤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 등 국내외 격변이 잇따름
- 을미사변으로 왕비를 잃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했다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로 즉위해 자주독립을 선언
- 러일전쟁 이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헤이그 특사 파견이 빌미가 되어 강제 퇴위당함
이름과 호칭
고종은 왕에서 황제로 지위가 바뀐 유일한 조선 국왕입니다. 재위 후반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스스로 황제(광무제)에 올랐다는 점에서 '묘호'와 '황제 칭호'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 아명·본명 | 이명복(李命福) → 이희(李熙)로 개명 |
| 즉위 경위 | 철종의 후사가 끊기자 신정왕후의 양자(익종의 후사)로 입적되어 왕위 계승 |
| 지위 변화 | 조선 국왕 → (1897) 대한제국 황제(연호 광무) |
| 묘호(廟號) | 고종(高宗) |
| 퇴위 후 지위 | 태황제(太皇帝)로 물러남(1907) |
가계도 — 이희(고종)를 중심으로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철종보다도 더 먼 방계 왕족입니다. 신정왕후의 지명으로 익종(효명세자)의 법적 후사가 되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명성황후 민씨
왕비 · 1895 을미사변으로 시해
1남(생존)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고종은 철종의 직계가 아닌 방계 왕족(흥선대원군의 아들) 출신 — 선조·인조·철종에 이은 방계 승계의 연장선
- 즉위 초 생부 흥선대원군이 섭정으로 실권을 행사하다가, 훗날 며느리 명성황후 세력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로 바뀜
- 왕비 명성황후가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사건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됨
생애 타임라인
1863년
즉위
철종 승하 후 신정왕후의 지명으로 11세에 즉위. 신정왕후 수렴청정 이후 생부 흥선대원군이 섭정으로 실권을 행사.
1863~1873년
흥선대원군 집권기
서원 철폐(600여 개 → 47개), 경복궁 중건(원납전·당백전 발행), 호포법 시행 등 강력한 내정 개혁과 왕실 권위 회복을 추진.
1866년
병인양요
프랑스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입했으나 격퇴됨. 통상수교거부정책이 강화되며 전국에 척화비가 세워짐.
1871년
신미양요
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를 침입했으나 격퇴됨.
1873년
친정 시작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시작. 이후 명성황후 세력이 정국을 주도.
1876년
강화도조약
일본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을 체결, 부산·원산·인천이 순차적으로 개항됨.
1882년
임오군란
구식 군인들의 차별 대우에 대한 반발로 봉기. 흥선대원군이 잠시 재집권했으나 청군 개입으로 진압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화됨.
1884년
갑신정변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으로 정변을 일으켰으나 청군 개입으로 '3일천하'로 끝남.
1894년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갑오개혁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청군을 부르자 일본도 파병, 청일전쟁으로 이어짐. 같은 해 신분제·과거제 폐지 등 갑오개혁이 추진됨.
1895년
을미사변
일본 낭인들이 궁궐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
1896년
아관파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약 1년간 머무름.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 국호를 대한제국·연호를 광무로 정해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선언.
1904~1905년
러일전쟁·을사늑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 지배력을 굳히고,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 통감부가 설치됨(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1907년
헤이그 특사·강제 퇴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이준·이상설·이위종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했으나 실패, 이를 구실로 일본의 강요에 의해 퇴위해 순종에게 양위.
1919년
승하
덕수궁에서 승하(향년 68세). 독살설이 널리 퍼지며 3·1운동 촉발의 한 계기가 됨.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통상수교거부정책
즉위 초 실권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붕당의 근거지였던 서원을 대폭 철폐하고, 왕실 권위 회복을 위해 경복궁을 중건했으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는 호포법을 시행했습니다. 동시에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하는 정책을 펴며 병인양요(1866)·신미양요(1871)를 겪었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거부 의지를 알렸습니다.
② 개항과 근대화의 시도, 그리고 격변
친정을 시작한 고종은 강화도조약(1876)으로 문호를 개방했지만, 이후 임오군란(1882)·갑신정변(1884)·동학농민운동(1894)이 잇따르며 청과 일본이 번갈아 조선의 내정에 개입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벌어진 청일전쟁(1894~95)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같은 해 신분제 폐지 등을 담은 갑오개혁이 추진되었습니다.
을미사변 → 아관파천 (1895~96)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약 1년간 머무름.
대한제국 선포 (1897)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 국호 대한제국·연호 광무 선포. 자주독립국가임을 대내외에 천명.
③ 국권 피탈의 과정
러일전쟁(1904~05)에서 승리한 일본은 을사늑약(1905)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했습니다. 고종은 이에 맞서 헤이그 특사(1907)를 파견해 국제사회에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열강의 외면으로 실패했고, 일본은 이를 구실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습니다.
시험 포인트
- 흥선대원군의 내정 개혁(서원 철폐·경복궁 중건·호포법)과 통상수교거부정책(병인양요·신미양요)을 하나의 시기로 묶어 기억하기
- 강화도조약(1876) → 임오군란(1882) → 갑신정변(1884) →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1894) → 갑오개혁(1894)의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기
- 을미사변(1895) → 아관파천(1896) → 대한제국 선포(1897)의 흐름을 왕비 시해에서 황제 즉위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하기
- 러일전쟁(1904~05) → 을사늑약(1905) → 헤이그 특사(1907) → 강제 퇴위(1907)로 이어지는 국권 상실 과정을 순서대로 정리하기
주요 인물
즉위 초 10년간 실권을 행사하며 개혁과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주도.
친정을 시작한 고종을 도와 정국을 주도했으나 일본에 의해 시해됨.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3일천하'로 실패, 이후 일본으로 망명.
동학농민군을 이끌었으며, 이 봉기가 청일전쟁의 빌미가 됨.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되었으나 열강의 외면으로 실패.
고종의 강제 퇴위 후 황위를 이었으나 곧 국권을 상실.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 항목 | 내용 |
| 이름 | 이명복 → 이희(李熙) · 묘호 고종 · 대한제국 광무제 |
| 출생~사망 | 1852년 ~ 1919년 (향년 68세) |
| 재위 기간 | 1863년 ~ 1907년 (약 44년, 강제 퇴위) |
| 결정적 사건 | 대원군 집권·양요(1863~73) → 강화도조약(1876) → 임오군란·갑신정변(1882~84) →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갑오개혁(1894) → 을미사변·아관파천(1895~96) → 대한제국 선포(1897) → 을사늑약(1905) → 헤이그 특사·강제 퇴위(1907) |
| 가족 | 명성황후 민씨(을미사변으로 시해, 순종을 낳음) |
| 후계 | 순종(27대, 외아들) |
"황제의 관을 썼으나, 나라의 문은 이미 열강의 손에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