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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9대 왕
성종 이혈 (成宗 李娎)
세조의 손자 ·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둘째 아들 · 조선의 문물 제도를 완성한 왕
| 출생 | 1457년(세조 3년) 음력 7월, 한양. 의경세자(추존 덕종)와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의 둘째 아들 |
| 재위 시작 | 1469년 11월 — 숙부 예종이 급사하자 13세로 즉위,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 |
| 친정 시작 | 1476년(성종 7년) — 20세에 수렴청정이 끝나고 직접 정치를 시작 |
| 재위 종료 | 1494년 12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494년 음력 12월 24일, 창덕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38세 |
| 능 | 선릉(宣陵),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
성종은 예종의 아들이 아니라 조카로서 왕위를 이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즉위 전 봉작인 자을산군을 함께 기억해두세요.
| 본명(휘) | 이혈(李娎) |
| 봉작 | 자을산군(者乙山君) → 국왕 |
| 묘호(廟號) | 성종(成宗) — '문물과 제도를 이루었다(成)'는 뜻 |
| 시호(諡號) | 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
아버지 의경세자는 세조의 맏아들로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했으나(세조 편 참고), 성종이 즉위한 뒤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정비 세 명 중 두 번째 왕비가 폐출·사사된 폐비 윤씨입니다.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한 성종을 대신해, 할머니 정희왕후가 7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 한명회 등 훈구 공신들의 영향력도 여전히 강했습니다.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한 조선의 기본 법전 경국대전을 여러 차례 수정한 끝에 완성해 반포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통치 체제와 신분·재산·형벌 관련 규정을 법적으로 완비한 사건으로, 이후 조선 500년 통치의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계유정난 이후 권력을 독점해 온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한 신진 학자 세력인 사림파(김종직 등)를 등용해 정치 세력의 균형을 도모했습니다. 이는 훗날 사화(士禍)가 반복되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왕비 윤씨가 투기 등의 문제로 폐출되었다가 결국 사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들 연산군이 훗날 생모의 죽음에 대해 보복하는 갑자사화(1504)의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동국여지승람》(지리서), 《동국통감》(역사서), 《악학궤범》(음악 이론서)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편찬해 세종 대에 이어 조선 전기 문물 제도를 한층 더 완성했습니다.
성종 즉위 초 7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이끈 대왕대비.
부덕(婦德)을 다룬 《내훈》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며, 며느리 폐비 윤씨 사건에도 깊이 관여.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학자로 성종의 등용을 받아 중앙 정계에 진출.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국가 편찬 사업을 주도.
폐비 윤씨의 아들로, 훗날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갑자사화를 일으킴.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혈(李娎) · 봉작 자을산군 · 묘호 성종 |
| 출생~사망 | 1457년 ~ 1494년 (향년 38세) |
| 재위 기간 | 1469년 ~ 1494년 (약 25년, 초기 7년은 수렴청정) |
| 대표 업적 | 경국대전 완성·반포(1485), 홍문관 설치, 사림파 등용, 각종 서적 편찬 |
| 가족 | 공혜왕후(무자녀) · 폐비 윤씨(연산군) · 정현왕후(중종) · 후궁 다수 |
| 후계 | 연산군(10대, 장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