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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0대 왕
경종 이윤 (景宗 李昀)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 · 병약하여 후사를 남기지 못한 조선 제20대 국왕
| 출생 | 1688년(숙종 14년) 음력 10월, 한양. 숙종과 희빈 장씨(장희빈)의 아들 |
| 세자 책봉 | 1690년(숙종 16년) — 3세에 원자 정호와 세자 책봉. 이 일이 기사환국의 발단이 됨 |
| 재위 시작 | 1720년 6월 — 숙종 승하 직후 33세로 즉위 |
| 재위 종료 | 1724년 8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724년 음력 8월 25일, 창경궁에서 승하(게장·생감을 먹은 뒤 급격히 병세 악화)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37세 |
| 능 | 의릉(懿陵), 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 |
경종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원자로 정해지고 3세에 세자로 책봉될 만큼 일찍부터 후계자로 확정되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기사환국이라는 큰 정치적 격변을 불러왔다는 점을 기억해두세요.
| 본명(휘) | 이윤(李昀) |
| 봉작 | 원자(1689) → 왕세자(1690) → 국왕 |
| 묘호(廟號) | 경종(景宗) |
| 시호(諡號) | 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 |
부모는 숙종과 희빈 장씨로 숙종 편과 이어집니다. 두 왕비 모두 소생을 남기지 못해, 경종 승하 후 왕위는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에게 넘어갔습니다.
병약한 경종에게 후사가 없자,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은 이복동생 연잉군을 서둘러 왕세제로 책봉하게 했고, 나아가 왕세제의 대리청정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이는 소론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대리청정 추진 과정에서 노론이 왕권을 위협한다는 명분이 제기되며, 노론 4대신인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가 왕세제 시해 음모(삼수의 옥)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처형되거나 사사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소론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경종은 왕세제 연잉군이 올렸다는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삼과 부자를 처방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며, 연잉군(영조)이 형을 독살했다는 독살설이 오랫동안 제기되었습니다.
경종 독살설은 단순한 뒷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영조가 즉위한 뒤에도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가 이 의혹을 명분 삼아 이인좌의 난(1728) 등 반란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영조는 재위 내내 이 정통성 시비를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숙종 대 환국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경종 즉위 전 이미 사사됨(숙종 편 참고).
왕세제 대리청정을 주도하다 삼수의 옥에 연루되어 처형·사사됨.
노론 4대신의 실각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 경종을 뒷받침함.
신임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세제 자리를 지켰고, 경종 사후 즉위.
경종의 두 번째 왕비로 소생 없이 경종을 여읨.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윤(李昀) · 묘호 경종 |
| 출생~사망 | 1688년 ~ 1724년 (향년 37세) |
| 재위 기간 | 1720년 ~ 1724년 (약 4년) |
| 결정적 사건 | 세자 책봉(1690, 기사환국 발단) → 즉위(1720) → 왕세제 책봉·대리청정 논란(1721) → 신임사화(1721~22) → 독살설 속 승하(1724) |
| 가족 | 단의왕후(추존, 소생 없음) · 선의왕후(소생 없음) |
| 후계 | 영조(21대, 이복동생 연잉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