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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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0대 왕

이윤 조선 제20대 왕 묘호 경종(景宗) 재위 1720~1724 신임사화 · 왕세제 대리청정 논란 · 독살설

한눈에 보기

경종 이윤 (景宗 李昀)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 · 병약하여 후사를 남기지 못한 조선 제20대 국왕

1688년출생년도
1720년재위 시작
1724년재위 종료(승하)
1724년사망년도
향년 37세(세는나이)
약 4년재위 기간
출생1688년(숙종 14년) 음력 10월, 한양. 숙종과 희빈 장씨(장희빈)의 아들
세자 책봉1690년(숙종 16년) — 3세에 원자 정호와 세자 책봉. 이 일이 기사환국의 발단이 됨
재위 시작1720년 6월 — 숙종 승하 직후 33세로 즉위
재위 종료1724년 8월 — 재위한 채로 승하
사망1724년 음력 8월 25일, 창경궁에서 승하(게장·생감을 먹은 뒤 급격히 병세 악화)
나이(향년)세는나이 37세
능의릉(懿陵), 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
  왜 논란이 끊이지 않을까?
  • 어려서부터 병약했고 후사가 없어, 즉위 이듬해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삼아야 했음
  • 노론이 왕세제 대리청정을 밀어붙이다 오히려 역풍을 맞아 대거 숙청된 신임사화가 일어남
  • 재위 4년 만에 갑작스레 승하했는데, 죽기 직전 연잉군이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었다는 사실 때문에 독살설이 꾸준히 제기됨
  • 이 독살설은 훗날 영조의 왕위 정통성을 흔드는 두고두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함

이름과 호칭

경종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원자로 정해지고 3세에 세자로 책봉될 만큼 일찍부터 후계자로 확정되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기사환국이라는 큰 정치적 격변을 불러왔다는 점을 기억해두세요.

본명(휘)이윤(李昀)
봉작원자(1689) → 왕세자(1690) → 국왕
묘호(廟號)경종(景宗)
시호(諡號)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

가계도 — 이윤(경종)을 중심으로

부모는 숙종과 희빈 장씨로 숙종 편과 이어집니다. 두 왕비 모두 소생을 남기지 못해, 경종 승하 후 왕위는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에게 넘어갔습니다.

숙종 이순
아버지 (조선 제19대 왕)
희빈 장씨
생모 · 후궁(한때 왕비)
이윤
경종 (본인)
단의왕후 심씨
초비 · 세자빈 시절 사망, 사후 왕비 추존
선의왕후 어씨
계비
숙빈 최씨 소생
이복동생
왕세제
연잉군
왕세제(1721) → 21대 영조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두 왕비 모두 소생이 없어 경종의 직계 후사가 끊김
  • 노론의 강요로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을 세제로 삼은 것은 형제 계승의 드문 사례
  •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연잉군이 올린 음식이 얽히면서, 영조는 즉위 내내 형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떨쳐내야 했음

생애 타임라인

1688년
출생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로 출생.
1689~1690년
원자 정호·세자 책봉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원자로 정해지고 3세에 세자로 책봉됨. 이를 둘러싼 갈등이 기사환국을 촉발.
1720년
즉위
숙종 승하 직후 33세로 즉위. 병약한 체질로 국정 수행에 어려움을 겪음.
1721년
왕세제 책봉
후사가 없자 노론의 강요로 이복동생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
1721년
왕세제 대리청정 논란
노론이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강하게 주장하자 소론이 반발하며 붕당 대립이 격화됨.
1721~1722년
신임사화(신축옥사·임인옥사)
노론이 왕세제를 옹립하려다 오히려 역풍을 맞음. 노론 4대신(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이 왕세제 시해 음모(삼수의 옥) 혐의로 처형·사사되고 소론이 집권.
1724년 8월
승하
게장과 생감을 먹은 후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재위 4년 만에 승하(향년 37세). 독살설이 꾸준히 제기됨. 왕세제 연잉군(영조)이 왕위를 이음.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논란 (1721)

병약한 경종에게 후사가 없자,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은 이복동생 연잉군을 서둘러 왕세제로 책봉하게 했고, 나아가 왕세제의 대리청정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이는 소론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② 신임사화 — 노론의 몰락 (1721~1722)

대리청정 추진 과정에서 노론이 왕권을 위협한다는 명분이 제기되며, 노론 4대신인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가 왕세제 시해 음모(삼수의 옥)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처형되거나 사사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소론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③ 갑작스러운 승하와 독살설 (1724)

경종은 왕세제 연잉군이 올렸다는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삼과 부자를 처방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며, 연잉군(영조)이 형을 독살했다는 독살설이 오랫동안 제기되었습니다.

④ 영조 정통성 시비로의 연결

경종 독살설은 단순한 뒷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영조가 즉위한 뒤에도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가 이 의혹을 명분 삼아 이인좌의 난(1728) 등 반란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영조는 재위 내내 이 정통성 시비를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시험 포인트
  • 경종의 세자 책봉(1690)이 기사환국의 발단이었다는 점을 숙종 편과 연결해서 기억하기
  • 신임사화(1721~22)에서 숙청된 쪽은 노론이며, 집권한 쪽은 소론임을 정확히 구분하기
  • 경종의 독살설이 영조의 왕위 정통성 논란과 이후 이인좌의 난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기억하기
  • 후사 없는 경종의 뒤를 이복동생(영조)이 이었다는 점 — 조선에서 흔치 않은 형제 간 왕위 계승 사례

주요 인물

희빈 장씨
생모

숙종 대 환국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경종 즉위 전 이미 사사됨(숙종 편 참고).

김창집 · 이이명 · 이건명 · 조태채
노론 4대신 · 신임사화 희생자

왕세제 대리청정을 주도하다 삼수의 옥에 연루되어 처형·사사됨.

소론 대신들
신임사화 이후 집권 세력

노론 4대신의 실각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 경종을 뒷받침함.

연잉군(영조)
이복동생 · 왕세제 → 21대 왕

신임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세제 자리를 지켰고, 경종 사후 즉위.

선의왕후 어씨
계비

경종의 두 번째 왕비로 소생 없이 경종을 여읨.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이름이윤(李昀) · 묘호 경종
출생~사망1688년 ~ 1724년 (향년 37세)
재위 기간1720년 ~ 1724년 (약 4년)
결정적 사건세자 책봉(1690, 기사환국 발단) → 즉위(1720) → 왕세제 책봉·대리청정 논란(1721) → 신임사화(1721~22) → 독살설 속 승하(1724)
가족단의왕후(추존, 소생 없음) · 선의왕후(소생 없음)
후계영조(21대, 이복동생 연잉군)
"짧은 치세 위에, 다음 왕의 정통성을 뒤흔들 그림자를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