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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8대 왕
예종 이황 (睿宗 李晄)
세조의 둘째 아들 · 조선 제8대 국왕 · 조선 역대 최단 재위 기간 중 하나를 기록
| 출생 | 1450년(세종 32년) 음력 1월, 한양. 세조의 둘째 아들(당시는 아직 세조 즉위 전) |
| 세자 책봉 | 1457년(세조 3년) — 형 의경세자가 요절하자 8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 |
| 재위 시작 | 1468년 9월 — 아버지 세조 승하 직후 즉위(만 19세) |
| 재위 종료 | 1469년 11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469년 음력 11월 28일, 경복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20세 |
| 능 | 창릉(昌陵), 현재 경기도 고양시 |
예종은 원래 왕이 될 예정이 아니었으나,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나며 세자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가계도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 본명(휘) | 이황(李晄) |
| 자(字) | 명조(明照) |
| 봉작 | 해양대군(海陽大君) → 왕세자(1457) → 국왕 |
| 묘호(廟號) | 예종(睿宗) |
| 시호(諡號) | 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 |
부모는 세조 이유와 정희왕후 윤씨로 세조 편과 동일합니다. 세자빈이 아들을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등, 문종·단종 대와 비슷한 불운이 이어졌습니다.
원래 세자가 아니었던 예종은, 형 의경세자가 20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19세의 젊은 나이로 즉위하자, 아버지 세조는 생전에 한명회·신숙주 등 신임하는 원로 대신들이 승정원에 상주하며 국정을 함께 처리하도록 하는 원상제(院相制)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이는 어린 왕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공신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게 유지되는 결과로도 이어졌습니다.
세조 때 이시애의 난 진압 등으로 이름을 떨친 젊은 무신 남이가, 예종 즉위 직후 유자광의 고변으로 역모 혐의를 받아 처형되었습니다. 왕권 교체기의 불안정한 정치 지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입니다.
예종이 갑작스레 승하하자, 왕위 계승 서열상으로는 아들 제안대군(4세)이나 형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군이 우선될 수 있었지만, 정희왕후의 결정으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한명회의 사위였던 자을산군(성종)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예종 승하 후 후계자로 자을산군(성종)을 지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함.
예종의 첫 장인이자 원상으로 국정에 참여했고, 훗날 성종의 장인도 됨.
세조 때부터 이어진 공신으로 원상제 하에서 국정을 함께 처리.
이시애의 난 등에서 공을 세운 젊은 무장이었으나 역모 혐의로 처형됨.
남이를 역모 혐의로 고발해 옥사를 일으킨 인물.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황(李晄) · 봉작 해양대군 · 묘호 예종 |
| 출생~사망 | 1450년 ~ 1469년 (향년 20세) |
| 재위 기간 | 1468년 ~ 1469년 (약 1년 2개월, 조선 역대 최단 재위 중 하나) |
| 결정적 사건 | 형의 요절로 세자 책봉(1457) → 즉위·원상제(1468) → 남이의 옥(1468) → 요절(1469) |
| 가족 | 장순왕후 한씨(1남, 요절) · 안순왕후 한씨(1남 2녀, 제안대군) |
| 후계 | 성종(9대, 조카 자을산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