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14대의 이야기는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임진왜란(1592~1598)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아래 카드와 지도, 퀴즈는 실제 사료(《선조실록》·《징비록》·《난중일기》·《쇄미록》 등)를 바탕으로 만든
체험형 자료입니다. 카드를 뒤집고, 전투의 발자취를 클릭하고, 퀴즈를 풀며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고, 평화는 어떻게 회복되는가"를 함께 탐구해 보세요.
카드를 클릭하면 사료의 원문 요약과 해설이 뒤집혀 나타납니다.
몽진(蒙塵)의 새벽
《선조실록》 · 《연려실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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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5년(1592) 4월 30일 기사 · 연려실기술
"임금이 새벽에 도성을 나가 피란길에 올랐다 …"
한양이 함락되기 직전, 선조는 새벽어둠을 틈타 의주로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는 임금에게 분노해 궁궐과, 노비 문서가 보관된 장예원·형조에 불을 질렀다고 전해집니다. 전쟁은 늘 힘없는 백성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탄금대의 패배
류성룡, 《징비록(懲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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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징비록》
"신립이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쳤으나, 조총 앞에 조선의 정예 기병이 무너졌다."
신립 장군이 이끈 조선군 주력이 탄금대에서 일본군의 신무기 조총에 궤멸한 전투입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 패전을 전쟁 초반 조선이 급속히 무너진 결정적 계기로 기록했습니다. 무기와 전술의 격차가 전쟁 초반 승패를 갈랐음을 보여줍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이충무공행록》 · 임진장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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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언행을 기록한 《이충무공행록》(조카 이분 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상대해야 했던 명량해전(1597) 전날,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압도적 열세 속에서도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의 흐름을 바꾼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떠도는 자의 기록
오희문, 《쇄미록(瑣尾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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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문 《쇄미록》(1591~1601, 개인 피란 일기)
"쇄미(瑣尾)" — 《시경》에서 따온 말로 '보잘것없이 떠도는 신세'를 뜻함
왕도 장수도 아닌 한 양반이 전쟁 중 겪은 굶주림, 가족과의 이별, 피란살이를 9년간 매일 기록한 일기입니다. 승전보와 어전 기록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전해주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전쟁의 발자취 — 지점을 눌러 이야기를 확인하세요
위의 숫자 버튼을 눌러 각 전투의 이야기를 확인해 보세요.
전쟁이 끝난 뒤, 선조는 그 상흔을 수습하기 위한 외교를 시작했습니다. 카드를 클릭해 보세요.
사명대사, 바다를 건너다
《선조실록》 37~38년 기사 · 《분충서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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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7년(1604)~38년(1605) 기사 · 사명대사 문집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승 유정(사명대사)을 일본에 보내 강화를 타진하게 하다."
전쟁이 끝난 지 6년 뒤인 1604년, 선조는 승려 사명대사 유정을 강화 사절로 일본에 파견합니다. 유정은 교토 후시미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고, 이듬해 조선인 포로 수천 명을 데리고 귀국했습니다. 총이나 칼이 아니라 대화로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려 한 시도였습니다.
끊어졌던 길을 다시 잇다
기유약조(1609)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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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약조(己酉約條), 선조 사후 광해군 원년(1609) 체결
"대마도를 매개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를 다시 연다."
선조 말년의 강화 교섭을 발판 삼아, 광해군 즉위 직후인 1609년 대마도(쓰시마)를 통해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공식적으로 재개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며 200년 넘게 평화적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전쟁 직후의 외교가 다음 세대의 평화를 준비한 것입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데리고 돌아온 조선인 포로는 몇 명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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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료 속으로: 3문제 도전!
정답을 클릭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맞춘 문제 0 / 3
Q1. 임진왜란은 1592년에 시작해 1598년까지, 총 7년간 이어졌다.
Q2. 단 12척의 배로 133척에 이르는 일본 수군을 물리친 해전은 무엇일까요?
Q3. 전쟁이 끝난 뒤 선조는 승려 사명대사를 일본에 보내 조선인 포로들을 데려오게 했다.
⚔️ 전쟁은 백성의 눈물로 시작을 알렸고, 🕊️ 평화는 대화와 발걸음으로 되찾아졌습니다. 사료 한 줄 한 줄에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