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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6대 왕
인조 이종 (仁祖 李倧)
선조의 손자 · 정원군의 아들 · 반정으로 즉위해 두 차례 호란을 겪은 조선 제16대 국왕
| 출생 | 1595년(선조 28년) 음력 11월, 한양. 정원군(선조의 서자)과 연주부부인 구씨의 아들, 능양군에 봉해짐 |
| 재위 시작 | 1623년 3월 —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29세로 즉위 |
| 재위 종료 | 1649년 5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649년 음력 5월 8일, 창덕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55세 |
| 능 | 장릉(長陵), 현재 경기도 파주시 |
인조는 선조의 직계가 아닌 손자로서, 반정을 통해 곧바로 왕이 된 경우입니다. 즉위 전 봉작인 능양군을 기억해두세요.
| 본명(휘) | 이종(李倧) |
| 봉작 | 능양군(綾陽君) → 국왕(반정으로 즉위, 세자를 거치지 않음) |
| 묘호(廟號) | 인조(仁祖) — '어질고 의로운 시조'라는 뜻으로, 반정의 정당성을 강조 |
| 시호(諡號) | 헌문열무명숙순효대왕(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 |
아버지 정원군은 선조 편에 등장하는 인빈 김씨 소생의 서자로, 인조 즉위 후 원종(元宗)으로 추존되었습니다.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병자호란 후 청에 볼모로 끌려갔던 것이 이후 왕위 계승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광해군의 폐모살제와 중립외교에 반발한 서인 세력이 김류·이귀·이괄 등을 중심으로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을 새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반정에 큰 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낀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한양을 점령했습니다. 조선 시대 반란군이 도성을 점령한 몇 안 되는 사례로, 인조는 공주까지 피란해야 했습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버리고 친명배금 정책을 펴자, 후금이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입했습니다. 1차 침입(정묘호란)은 형제관계 체결로 마무리되었으나, 청으로 국호를 바꾼 뒤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재침입한 병자호란에서는 남한산성 항전 끝에 항복했습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고,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의 수도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 오랜 기간 타국 생활을 했습니다.
청에서 서구 문물을 접하고 돌아온 소현세자가 귀국 두 달 만에 갑작스레 사망했고, 이듬해 며느리 강빈도 저주 혐의로 사사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은 청과 가까워진 소현세자에 대한 인조의 경계심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반정의 핵심 공신.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한때 한양을 점령.
8년간 청에 볼모로 있다 귀국 후 곧 사망, 서구 문물에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짐.
소현세자 사후 저주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사됨.
형과 함께 청에 볼모로 있었으며, 형의 사후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이음.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종(李倧) · 봉작 능양군 · 묘호 인조 |
| 출생~사망 | 1595년 ~ 1649년 (향년 55세) |
| 재위 기간 | 1623년 ~ 1649년 (약 26년) |
| 결정적 사건 | 인조반정(1623) → 이괄의 난(1624) → 정묘호란(1627) → 병자호란·삼전도의 굴욕(1636~37) → 소현세자 의문사·강빈옥사(1645~46) |
| 가족 | 인열왕후(소현세자·봉림대군·인평대군) · 계비 장렬왕후(소생 없음) |
| 후계 | 효종(17대, 둘째 아들 봉림대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