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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1대 왕
중종 이역 (中宗 李懌)
성종의 아들 · 연산군의 이복동생 · 신하들의 반정으로 옹립된 조선 제11대 국왕
| 출생 | 1488년(성종 19년) 음력 3월, 한양.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 |
| 재위 시작 | 1506년 9월 — 중종반정으로 신하들에 의해 옹립되어 즉위(19세) |
| 재위 종료 | 1544년 11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544년 음력 11월 15일, 경복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57세 |
| 능 | 정릉(靖陵),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
중종은 세자를 거치지 않고 반정으로 곧바로 왕이 된 특이한 사례입니다. 즉위 전 봉작인 진성대군을 기억해두세요.
| 본명(휘) | 이역(李懌) |
| 자(字) | 낙천(樂天) |
| 봉작 | 진성대군(晉城大君) → 국왕(세자를 거치지 않음) |
| 묘호(廟號) | 중종(中宗) — '연산군의 폭정을 끊고 나라를 중흥시켰다'는 의미 |
| 시호(諡號) | 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 |
부모는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로 성종 편과 동일하며, 연산군의 이복동생입니다. 세 명의 왕비 중 첫 번째는 즉위 직후 폐출되었고,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는 훗날 큰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박원종·성희안·유순정 등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새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중종 본인은 반정 계획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 오른 특수한 사례입니다.
즉위 직후, 부인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자 반정에 반대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반정 공신들이 왕비 폐출을 요구했습니다. 중종은 이를 받아들여 즉위 7일 만에 왕비를 폐출했는데, 이는 반정 세력의 힘이 왕권보다 강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중종은 사림파 학자 조광조를 등용해 인재를 천거로 뽑는 현량과 실시, 도교 제사 기관인 소격서 폐지, 반정 공신들의 부당한 공훈을 깎는 위훈 삭제 등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조광조의 급진 개혁에 위기를 느낀 훈구파(남곤·심정 등)가 반격에 나섰고, 중종 역시 조광조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게 되면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대거 숙청되었습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 나뭇잎 사건이 이 시기의 유명한 일화로 전해집니다.
기묘사화 이후로도 반정 공신 세력과 왕비 집안(외척)의 영향력이 계속 강하게 작용하면서, 중종은 재위 기간 내내 안정적인 왕권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반정의 핵심 인물들. 이후 국정을 좌우하는 공신 세력이 됨.
급진적인 도학 정치를 추진하다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사망.
조광조 세력을 견제하며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숙청.
폐출 후에도 남편을 그리워하며 치마바위에 치마를 걸어두었다는 설화로 유명.
훗날 아들 명종 즉위 시 수렴청정을 하며 조선 중기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침.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역(李懌) · 봉작 진성대군 · 묘호 중종 |
| 출생~사망 | 1488년 ~ 1544년 (향년 57세) |
| 재위 기간 | 1506년 ~ 1544년 (약 38년) |
| 결정적 사건 | 중종반정·즉위(1506) → 단경왕후 폐출(1506) → 조광조 개혁(1518) → 기묘사화(1519) |
| 가족 | 단경왕후(폐출) · 장경왕후(인종) · 문정왕후(명종) · 후궁 다수 |
| 후계 | 인종(12대, 장경왕후 소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