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학기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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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1대 왕

이역 조선 제11대 왕 묘호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중종반정 · 조광조 · 기묘사화

한눈에 보기

중종 이역 (中宗 李懌)

성종의 아들 · 연산군의 이복동생 · 신하들의 반정으로 옹립된 조선 제11대 국왕

1488년출생년도
1506년재위 시작
1544년재위 종료(승하)
1544년사망년도
향년 57세(세는나이)
약 38년재위 기간
출생1488년(성종 19년) 음력 3월, 한양.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
재위 시작1506년 9월 — 중종반정으로 신하들에 의해 옹립되어 즉위(19세)
재위 종료1544년 11월 — 재위한 채로 승하
사망1544년 음력 11월 15일, 경복궁에서 승하
나이(향년)세는나이 57세
능정릉(靖陵),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왜 독특한 즉위 과정을 가질까?
  • 스스로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신하들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얼떨결에 왕이 됨
  • 즉위 직후 부인(단경왕후)마저 반정 공신들의 요구로 7일 만에 폐출되는 아픔을 겪음
  • 재위 중반 조광조를 등용해 개혁 정치를 시도했으나 기묘사화로 실패
  • 38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에도 훈구·척신 세력에 휘둘려 왕권을 온전히 세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음

이름과 호칭

중종은 세자를 거치지 않고 반정으로 곧바로 왕이 된 특이한 사례입니다. 즉위 전 봉작인 진성대군을 기억해두세요.

본명(휘)이역(李懌)
자(字)낙천(樂天)
봉작진성대군(晉城大君) → 국왕(세자를 거치지 않음)
묘호(廟號)중종(中宗) — '연산군의 폭정을 끊고 나라를 중흥시켰다'는 의미
시호(諡號)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

가계도 — 이역(중종)을 중심으로

부모는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로 성종 편과 동일하며, 연산군의 이복동생입니다. 세 명의 왕비 중 첫 번째는 즉위 직후 폐출되었고,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는 훗날 큰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성종 이혈
아버지 (조선 제9대 왕)
정현왕후 윤씨
어머니
이역
중종 (본인)
단경왕후 신씨
초비 · 즉위 7일 만에 폐출
소생 없음
장경왕후 윤씨
계비 · 1515 산후 사망
1남 1녀
인종
세자 → 12대 왕
효혜공주
딸
문정왕후 윤씨
계비
1남 4녀
경원대군
→ 13대 명종
4공주
의혜·효순·경현·인순공주
후궁 다수
경빈 박씨 · 창빈 안씨 외
여러 군·옹주
복성군
경빈 박씨 소생
덕흥군
창빈 안씨 소생
그 외
다수의 군·옹주
  가계도에서 꼭 기억할 포인트
  • 단경왕후는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반정 공신들에 의해 폐출됨(치마바위 설화의 주인공)
  • 장경왕후 소생 인종과 문정왕후 소생 명종이 각각 12대·13대 왕이 되어 두 왕비의 자녀가 모두 왕위에 오름
  • 후궁 창빈 안씨의 아들 덕흥군의 아들이 훗날 14대 선조가 됨 — 왕위가 방계로 이어지는 시작점

생애 타임라인

1488년
출생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출생, 진성대군에 봉해짐.
1506년 9월
중종반정 · 즉위
박원종·성희안·유순정 등이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
1506년
단경왕후 폐출
즉위 직후 부인 신씨가 역적(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반정 공신들의 압박에 못 이겨 7일 만에 폐출됨.
1515년
장경왕후 사망
계비 장경왕후가 아들(훗날 인종)을 낳은 직후 산후병으로 사망.
1518년
조광조 등용 · 개혁 정치
사림파 조광조를 중용해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등 개혁 정책을 추진.
1519년
기묘사화
개혁에 반발한 훈구파의 공세와 왕의 의심 속에 조광조 등 사림파가 대거 숙청됨.
1521년
신사무옥
기묘사화의 여파로 남은 사림 세력과 관련자들이 추가로 처벌됨.
1544년
승하
재위 38년 만에 승하(향년 57세). 아들 인종이 왕위를 이음.

주요 사건 (사건별 정리)

① 중종반정과 수동적인 즉위 (1506)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박원종·성희안·유순정 등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새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중종 본인은 반정 계획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 오른 특수한 사례입니다.

② 단경왕후 폐출 (1506)

즉위 직후, 부인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자 반정에 반대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반정 공신들이 왕비 폐출을 요구했습니다. 중종은 이를 받아들여 즉위 7일 만에 왕비를 폐출했는데, 이는 반정 세력의 힘이 왕권보다 강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③ 조광조의 개혁 정치 (1518~1519)

중종은 사림파 학자 조광조를 등용해 인재를 천거로 뽑는 현량과 실시, 도교 제사 기관인 소격서 폐지, 반정 공신들의 부당한 공훈을 깎는 위훈 삭제 등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④ 기묘사화 (1519)

조광조의 급진 개혁에 위기를 느낀 훈구파(남곤·심정 등)가 반격에 나섰고, 중종 역시 조광조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게 되면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대거 숙청되었습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 나뭇잎 사건이 이 시기의 유명한 일화로 전해집니다.

⑤ 훈구·척신 정치의 지속

기묘사화 이후로도 반정 공신 세력과 왕비 집안(외척)의 영향력이 계속 강하게 작용하면서, 중종은 재위 기간 내내 안정적인 왕권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험 포인트
  • 중종은 세자 책봉 없이 반정으로 곧바로 즉위한 왕임을 기억하기
  • 조광조의 개혁(현량과·위훈삭제)과 그 결과인 기묘사화(1519)를 연결해서 기억하기
  • 4대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 중 기묘사화가 중종 대에 발생했다는 점을 다른 사화와 구분하기
  • 인종(장경왕후 소생)과 명종(문정왕후 소생)이 이복형제이며 모두 중종의 아들임을 기억하기

주요 인물

박원종 · 성희안 · 유순정
중종반정 주도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반정의 핵심 인물들. 이후 국정을 좌우하는 공신 세력이 됨.

조광조
사림파 개혁가

급진적인 도학 정치를 추진하다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사망.

남곤 · 심정
훈구파 · 기묘사화 주도

조광조 세력을 견제하며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숙청.

단경왕후 신씨
초비 · 즉위 7일 만 폐출

폐출 후에도 남편을 그리워하며 치마바위에 치마를 걸어두었다는 설화로 유명.

문정왕후 윤씨
계비

훗날 아들 명종 즉위 시 수렴청정을 하며 조선 중기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침.

시험 대비 한 장 요약

항목내용
이름이역(李懌) · 봉작 진성대군 · 묘호 중종
출생~사망1488년 ~ 1544년 (향년 57세)
재위 기간1506년 ~ 1544년 (약 38년)
결정적 사건중종반정·즉위(1506) → 단경왕후 폐출(1506) → 조광조 개혁(1518) → 기묘사화(1519)
가족단경왕후(폐출) · 장경왕후(인종) · 문정왕후(명종) · 후궁 다수
후계인종(12대, 장경왕후 소생)
"신하들이 세운 왕은, 신하들의 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