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프로젝트 대시보드
조선 제21대 왕
영조 이금 (英祖 李昑)
숙종의 넷째 아들 · 경종의 이복동생 · 조선 역대 최장 재위·최장수를 기록한 제21대 국왕
| 출생 | 1694년(숙종 20년) 음력 9월, 한양.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에 봉해짐 |
| 왕세제 책봉 | 1721년(경종 1년) — 경종이 후사가 없자 노론의 강요로 왕세제가 됨 |
| 재위 시작 | 1724년 8월 — 경종 승하 직후 31세로 즉위 |
| 재위 종료 | 1776년 3월 — 재위한 채로 승하 |
| 사망 | 1776년 음력 3월 5일, 경희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83세 — 조선 역대 왕 중 최장수 |
| 능 | 원릉(元陵), 현재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
영조는 세자가 아닌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되어 즉위한 특이한 사례입니다. 형 경종에게 후사가 없어 동생 신분으로 다음 왕위를 예약한 경우로, 이 과정 자체가 노론·소론 간 극심한 갈등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 본명(휘) | 이금(李昑) |
| 봉작 | 연잉군(延礽君) → 왕세제(1721) → 국왕 |
| 묘호(廟號) | 영조(英祖) |
| 시호(諡號) | 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 |
부모는 숙종과 후궁 숙빈 최씨로 숙종 편과 이어지며, 희빈 장씨 소생인 경종의 이복동생입니다. 큰아들 효장세자를 일찍 잃고, 둘째 아들 사도세자마저 비극적으로 잃은 뒤 손자인 정조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영조는 즉위 전 왕세제 시절 형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올린 일이 있었는데, 얼마 뒤 경종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독살설에 휘말렸습니다. 이 소문은 재위 내내 정통성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붕당 간 대립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영조는 노론·소론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등용하는 탕평책을 국정 기조로 삼았습니다. 1742년에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두루 사귀되 편을 가르지 않는 것이 군자의 공심'이라는 원칙을 새겨 넣었습니다.
양인 장정에게 부과되던 군포 부담을 2필에서 1필로 절반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부족해진 재정은 어염세·선박세 등으로 보충해, 백성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 대표적 민생 개혁으로 평가받습니다.
세자 시절부터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사도세자의 행실을 둘러싼 논란과 노론·소론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겹치면서, 영조는 결국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8일 만에 죽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손자 정조의 왕위 계승 정통성 문제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후사 없이 승하해 영조가 왕세제로서 왕위를 잇게 된 배경이 됨.
세자로서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서다 뒤주에 갇혀 사망.
임오화변 당시 아들의 비행을 영조에게 직접 고했다고 전해짐.
노론·소론을 가리지 않고 등용되어 탕평 정국을 뒷받침함.
사도세자의 아들로,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정통성을 갖추고 즉위.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금(李昑) · 봉작 연잉군 · 묘호 영조 |
| 출생~사망 | 1694년 ~ 1776년 (향년 83세, 조선 역대 최장수) |
| 재위 기간 | 1724년 ~ 1776년 (약 52년, 조선 역대 최장 재위) |
| 결정적 사건 | 왕세제 책봉·신임사화(1721) → 즉위(1724) → 이인좌의 난(1728) → 탕평비(1742) → 균역법(1750) → 임오화변(1762) |
| 가족 | 정성왕후·정순왕후(소생 없음) · 정빈 이씨(효장세자, 요절) · 영빈 이씨(사도세자) |
| 후계 | 정조(22대, 사도세자의 아들 · 효장세자 양자로 입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