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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4대 왕
세종 이도 (世宗 李祹)
태종의 셋째 아들 · 조선 제4대 국왕 · 조선의 정치·과학·문화를 크게 발전시킨 성군
| 출생 | 1397년(태조 6년) 음력 4월 10일, 한양 준수방(현재 서울 종로구 부근). 태종의 셋째 아들 |
| 재위 시작 | 1418년 8월 10일 — 형 양녕대군의 폐세자 이후 세자로 책봉되어 곧바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 |
| 재위 종료 | 1450년 음력 2월 17일 — 재위한 채로 승하(양위 없이 재위 중 사망) |
| 사망 | 1450년 음력 2월 17일(양력 3월 30일), 영응대군 사저(동별궁)에서 승하 |
| 나이(향년) | 세는나이 54세 — 즉위 당시는 만 21세 |
| 능 | 영릉(英陵), 현재 경기도 여주시 |
'세종대왕'이라는 호칭이 워낙 유명해 본명을 잊기 쉽습니다. 본명 이도와 즉위 전 봉작인 충녕대군을 함께 기억해 두세요.
| 본명(휘) | 이도(李祹) |
| 자(字) | 원정(元正) |
| 봉작 | 충녕대군(忠寧大君) → 왕세자 → 국왕 |
| 묘호(廟號) | 세종(世宗) |
| 시호(諡號) |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
| 흔한 호칭 | 세종대왕(世宗大王) — '대왕'은 후대에 그 업적을 기려 붙인 존칭 |
부모는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로 태종 편과 동일합니다. 정비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훗날의 문종과 세조가 모두 태어났습니다.
한자를 익히기 어려운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창제 이후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그 원리와 사용법을 정리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내 세상에 알렸습니다.
장영실 등 기술자를 등용해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려주는 앙부일구, 자동으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자격루 등을 만들어 백성의 농사와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북방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해 최윤덕은 압록강 유역에 4군을, 김종서는 두만강 유역에 6진을 설치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한반도 북쪽 국경선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등 젊고 우수한 학자를 길러 학문 연구, 서적 편찬, 훈민정음 창제 작업 등에 참여시켰습니다.
아버지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도입한 6조직계제 대신, 왕이 신하들과 정책을 충분히 논의하는 의정부서사제로 되돌려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습니다.
조선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 의학서 《향약집성방》 등을 편찬하고, 박연을 통해 궁중 음악(아악)을 정비하는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분야를 발전시켰습니다.
세종의 정비로 문종·세조를 포함한 8남 2녀를 낳음.
노비 출신이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발탁되어 자격루·앙부일구 등 각종 과학 기구를 제작.
두만강 유역에 6진을 설치해 북방 영토를 넓힌 인물. 훗날 계유정난 때 희생됨.
압록강 유역에 4군을 설치해 북방 방어선을 확립.
집현전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각종 서적 편찬 작업에 참여한 대표 학자들.
오랜 기간 재상을 지내며 세종을 보좌한 명재상으로 유명.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도(李祹) · 봉작 충녕대군 · 묘호 세종 · 흔히 세종대왕으로 불림 |
| 출생~사망 | 1397년 ~ 1450년 (향년 54세) |
| 재위 기간 | 1418년 ~ 1450년 (약 32년, 재위 중 승하) |
| 대표 업적 | 훈민정음 창제·반포, 4군 6진 개척, 측우기·자격루 등 과학 기구, 집현전 운영 |
| 가족 | 정비 소헌왕후 심씨(8남 2녀, 문종·세조 포함) · 후궁 다수 |
| 후계 | 문종(5대, 장남 이향) |